3월 중순이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대화를 하던 도중 조 구청장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대뜸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한 아이의 어머니인 것으로 짐작되는 분이 보낸 감사 메시지였다. 서초구는 지난해 서초동 한우리정보문화센터를 시작으로 서초구 청사와 반포도서관, 서초문화예술회관 등 10곳에 카페를 열었다. 이름은 ‘늘봄카페’.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일하는 직장이다.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비장애인과 나란히 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다. 해외연수 기회도 제공했다. 휴대전화 메시지 발신자는 3박4일간 베트남으로 커피 연수를 다녀온 발달장애인 바리스타의 어머니였다.
18일 서초구는 염곡동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건물에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4명이 근무하는 ‘늘봄카페 11호점’을 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11호점을 포함해 늘봄카페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은 모두 70명이다. 이들은 하루 4시간씩 일하고 약 7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구는 연내 14호점까지 문을 열 계획이다.
1주일쯤 전엔 양천구(구청장 김수영)의 하재호 홍보정책과장을 만났다. 그는 휠체어로 이동하는 한 지체장애인 얘기를 꺼냈다. 인근에 인터넷에서 뜬 맛집이 있어 찾아갔는데 식당 입구가 계단으로 되어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대다수 이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는 현실. 당사자의 상실감은 컸다. 다행히 이 지역 공무원들은 그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마음을 쓰려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양천구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냈다. 장애인 복지를 위해 ‘10㎝ 턱나눔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주민 다수가 이용하는 시설 300곳을 선정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구는 “문턱이 10㎝ 낮아지면 휠체어를 타야 하는 누군가는 세상과 소통하는 출구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은 장애인들로 구성된 장애인유니버설디자인단이 주도한다. 장애인이 가고 싶어 하지만 이용하기 어려운 시설이 어디인지, 그 시설을 이용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사업을 지휘하는 것이다. 남들 눈에 쉽게 띄는 사업을 내세워 선전에만 열중하던 책상머리 정책을 지겹도록 보아온 터라 신선했다.
10㎝ 턱나눔은 사업을 끝내도 눈에 띄는 업적이 될 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사업 도중 남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일 만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이 없어도 마음은 전해진다. 휠체어를 탄 이들이 경사로를 통해 올라가면서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장애인의 날인 20일을 전후해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장애인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얼마를 투입해 몇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식의 뭉쳐진 정책보다 장애별로 다른 상황과 요구에 맞는 세분화된 정책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 씀씀이는 아주 조그만 부분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는 대통령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가 불가피한 만큼 야당과의 협치나 연정이 필연적이다. 야당과는 물론 지자체와도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다. 지방분권 강화라는 거대담론을 논하지 않더라도 국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지자체에 보다 많은 권한과 예산을 내어주는 건 합리적인 흐름으로 보인다. 마음 씀씀이로 주민들에게 다가간 지자체의 경험은 나라를 운영하는데도 큰 자산이 된다. 성공하는 정책에는 디테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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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정승훈] 마음 씀씀이가 정책이다
입력 2017-04-19 18:30 수정 2017-04-20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