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봄답지 않은 ‘참담’한 봄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갇혔고, 세월호는 여전히 가슴앓이로 남아 있고, 한반도에는 전화(戰火)의 기운이 맴돌고 있다. 새 대통령을 뽑는 19대 대선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국민들 사이에 예전 같은 열망과 정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호기심만은 여전하다. 누가 앞서가는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일 쏟아지는 여론조사 숫자는 믿어도 되는가? 학문적으로 말해서 숫자의 신비(mystique of numeral)가 오히려 진실을 호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지난해 11월 8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10월부터 한 달동안 지속적으로 추적해간 미 전국 67개 여론조사 중 오직 4개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예측할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23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관한 투표 결과에 대해서도 각종 여론조사는 거의 잘못 예측했었다. 그 바로 전 해에 이뤄진 영국의 총선 결과(2015년 5월 7일)에 대한 여론조사들은 더 크게 빗나갔었다. 이에 실망해 영국 정부 차원에서 여론조사 개선을 위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냈지만 별 수 없었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압승하리라는 우리의 여론조사 오류는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전 세계적 추세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 관련 여론조사들도 빗나갈 가능성은 너무나 확실하다. 주민등록번호나 휴대폰 전화번호의 전수(全數)를 이용한 무작위 표집이 가능해지지 않는 한 순수한 표집오차의 크기는 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각종 여론조사 및 텔레마케팅의 남용으로 전화 조사의 ‘응답률’이 평균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응답자들의 모집단 대표성은 도저히 확보될 수 없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거짓이 일상화된 커뮤니케이션 과잉 시대에 그나마 진솔한 응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기본’이 극도로 왜곡된 상황에서 오류를 발생시킬 다른 요인들, 예컨대 설문의 표현(wording), 조사 시기, 조사자의 훈련과 자세 등을 올바르게 설정한들 조사의 타당도와 신뢰도를 확보하기에 역부족이다.
이제 여론조사는 호기심을 파는 상품일 뿐이다. 더 이상 그것에 과학적 신뢰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당들은 각종 선거 후보자를 선정하는 데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형국으로 일반국민은 여론조사를 엄밀한 과학적 산물로 굳게 믿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잘 모르는 영역일수록 자신의 믿음을 과대평가하는 오판(Dunning-Kruger effect)’에 젖게 한다. 이런 오판이 누적되다가 어느 때 진실을 깨닫는 순간 거대한 사회적 불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론조사가 호기심 상품일 뿐인 또 다른 이유로는 정치적 무관심층의 증대와 투표율 감소다. 일반적으로 유권자의 30%는 투표 1주일 전까지 선거에 관심이 거의 없든지 아니면 아직도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집단이다. 이번에 투표율이 낮아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왜냐하면 한두 명을 제외하고 15명의 후보자 대부분 신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후보자들에 대해 정의적(情誼的) 의견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 곧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여론조사는 원천적으로 거짓 데이터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여론조사는 하나의 정치적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정당, 언론, 후보자, 유권자 모두 위에 언급한 ‘과대평가 오판’에 빠져 있지 않은지 엄밀히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김학수 DGIST 커뮤니케이션학 석좌교수
[시사풍향계-김학수] 여론조사, 빗나갈 수 있다
입력 2017-04-19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