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서 건강검진을 하는 날이다. 몸무게와 키를 재고 시력과 청력을 측정한다. 진단 결과지에 ‘시력’란을 들여다본다. ‘0’으로 표기됐다. 하나님 나라의 시력은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 시력’이다. 하나님의 길을 전혀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눈뜬 자들의 영성’(Simple Spirituality)은 눈멀었던 저자 크리스토퍼 휴어츠가 시력을 회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리타분한 영성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휴어츠는 빈민사역을 하는 국제선교단체 ‘육신이되신말씀’(wordmadeflesh.org)의 일원이다. 그가 인도 콜카타의 ‘죽어가는사람들의집’에서 봉사를 할 때다. 60세가량 된 맹인을 데려다 씻기고 먹이게 된다. 맹인의 눈은 진물로 가득했고 발가락은 쥐가 갉아먹어 피하조직이 드러나 있었다. 곪아가는 상처에는 구더기가 가득해 집게로 뽑아내야 했다. 휴어츠는 이 남자를 간병했다. 몇 주 뒤 남자는 회복됐고 그곳을 떠났다. 그 후 휴어츠는 예수가 맹인을 고친 이야기(눅 18:35∼43)를 읽는다. 그는 성경 속 맹인이 자신이라고 느낀다. “나 역시 눈먼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신이 되어 창조자 심판자 구속자 역할을 맡으려 했다.”(23쪽)
인도 페루 시에라리온 등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눈뜸의 경험과 그 의미를 담담하게 얘기해 나간다.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눈물이 난다. 휴어츠는 교만 개인주의 무절제 권력 승리주의가 자신의 눈을 멀게 했다고 고백한다. 대신 겸손 공동체 단순함 순종 깨어짐 등 5가지가 눈을 뜨게 했다고 한다. 그는 이 미덕을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손에 든 돌멩이 5개에 비유했다.
겸손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삭개오처럼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온유한 예수와 마주볼 때, 우리는 변화한다. 예수는 우리의 존엄함과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주신다. 겸손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환대받기 위해 우리가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49쪽). 타인 안에 있는 존엄성을 보는 눈은 공동체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공동체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존엄성을 부여한다. 거친 빵을 가난한 이와 나눌 때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휴어츠는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볼 때 우리의 영적 빈곤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놓는 순종은 사실 쉽지 않다.
휴어츠가 리마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영양부족이었고, 그중 많은 아이들이 경기 내내 배고픔을 잊기 위해 본드를 흡입했다.”(164쪽) 축구를 하다 가난한 마놀리토가 다른 사람의 겉옷을 훔친 뒤 쫓기는 장면을 본다. 휴어츠는 옷을 잃어버린 남자나 그걸 지켜보는 자신이 도둑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님이 준 물질을 절대적인 소유물로 여기는 자신이 이웃을 도둑으로 만들고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예수처럼 단순하게 살고 계속 자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휴어츠가 세계 곳곳에서 목격한 인간의 비참은 우리를 자괴감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겸손 공동체 단순함 순종 깨어짐이라는 5개의 돌멩이를 손에 쥐려고 애쓰면 우리 눈을 가리는 거인에 맞설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우리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하나님 보는 눈을 회복할 거란 기대가 생긴다. 휴어츠는 이 말로 책을 맺는다. “천천히 단순하게 나아가십시오.”
■곁들여 읽을 책
갑자기 눈이 멀어 간다면… 눈뜬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
한 운전자가 교통체증 속에서 갑자기 시력을 잃는다. 사람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눈이 멀어 간다. 당국은 눈먼 사람들을 격리한다. 눈이 멀게 된 사람들은 절망 속에 혼란스러워 한다. 눈먼 자들은 선동에 이끌려 폭력을 저지른다. 모든 사람이 시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한 안과 의사 아내만 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 눈뜬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를 묻는다.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해냄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내 '영적 시력' 얼마일까… 하나님 보는 눈을 떠라
입력 2017-04-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