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용산 미군기지 오염] 정부, 국민 건강 외면한채 美 눈치만 보며 숨기기 급급

입력 2017-04-19 05:02

대법원 판결로 공개된 용산 미군기지 지하수의 오염도는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오염된 지하수는 주변 지역은 물론 한강까지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한복판에 발암물질 공장이 있었던 셈인데 정부는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미국 눈치만 살피며 국민 건강은 도외시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환경부가 18일 공개한 ‘용산 기지 내부 지하수 1차 조사결과’를 보면, 일부 관정(管井)에서 고농도 벤젠이 검출됐다. 벤젠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독성물질이다. 생식독성이 확인됐으며 혈액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2015년 5월 서울 용산구청 맞은편 주변 반경 200m 이내 관정 14개를 뚫어 지하수를 채취했다. 관정명 ‘B01-873’에서 벤젠이 ℓ당 2.440㎎ 나왔다. 기준치인 0.015㎎/ℓ의 162배다. ‘B01-870’과 ‘RW-101’에서도 각각 97배와 95배에 달하는 벤젠이 검출됐다.

또 다른 발암물질인 에틸벤젠의 경우 기준치(0.45㎎/ℓ)를 넘은 관정이 5개가 나왔다. ‘B01-870’ 관정에서 ℓ당 1.163㎎이 검출돼 기준치를 2.6배 넘어섰다. 톨루엔은 1개 관정, 크실렌은 4곳이었다. 석유계 총탄화수소의 경우 3개 관정에서 나왔지만 기준치(1.5㎎/ℓ)를 넘은 곳은 없었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1차 조사결과만 공개했다. 2016년 이뤄진 2, 3차 조사 결과 공개 여부는 미군 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녹색연합 등이 제기한 정보공개 소송이 1차 조사결과에만 한정됐기에 2, 3차는 공개할 의무는 없으나 판결 취지를 애써 무시하는 태도다.

환경부는 미군기지 내부 문제는 미군 관할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사 이후 현재까지 얼마나 오염됐는지 주변 지하수나 한강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미군은 기지 내부에서 환경 사고가 나면 자체적으로 정화사업을 벌인다. 우리 정부에는 통보를 해주는데 현재까지 5건 정도 통보했다”고 말했다. 최근 시민단체가 미국 국방부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용산 기지 내부 환경오염 사고는 84건이었다. 우리 정부는 미군기지에서 환경 사고가 나도 제대로 통보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1차 조사 자료만을 공개했을 뿐이다. 용산기지 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도 모른다”면서 “대대적으로 합동 조사단을 꾸려서 기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관계자는 “안보문제나 국가기밀이 아니라 많은 시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환경범죄”라며 “자국민의 환경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동맹이라면 그게 누굴 위한 동맹이냐”고 반문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한 변호사는 “서울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이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제대로 된 오염 치유가 필요하고,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라 원인 제공자인 미국이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도경 임주언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