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 논란 ‘천경자 미인도’ 26년 만에 공개

입력 2017-04-19 05:00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가 18일 경기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미인도’를 가리키고 있다. ‘미인도’는 19일부터 소장품 특별전 ‘균열’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고 천경자 화백이 1991년 위작이라고 주장을 제기한 지 26년 만이다. 과천=김지훈 기자
18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미인도’ 진위 논란 관련 자료들. 1991년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감정한 한국화랑협회 감정서(가운데), 같은 해 천경자 화백이 ‘미인도’는 가짜라고 밝힌 자필공증확인서 사본(오른쪽). 뉴시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림, ‘미인도’가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고(故)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진작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미인도’가 18일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를 벗어나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1990년 11월 마지막 전시 이후 26년5개월, 1991년 천 화백이 위작 주장을 제기한 지 26년 만이다.

‘미인도’가 19일부터 내년 4월 29일까지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 ‘균열’에 출품됐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재구성해보는 전시로 ‘미인도’를 포함해 94점이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언론에 작품을 공개했다.

‘미인도’는 과천관 4전시실 안쪽 별도공간에 마련된 방탄유리 안에 전시돼 있다. 26×29㎝로 A4용지보다 조금 큰 크기의 이 작품에는 다른 작품과 달리 작가 이름이 명기돼 있지 않다. 대신 지금까지의 논란을 한번에 볼 수 있도록 각종 자료가 함께 전시됐다. 1980년 5월 미인도 인수 장부부터 2017년 기사까지 포함돼 있다. 재무부에서 만든 인수인계물품목록에는 ‘천경자 미인도 그림 1점 30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목록에는 이 작품의 특이사항에 대해 “소품으로서 작가(천경자)의 대표작으로 볼 수 없음” “전 정보부장(김재규) 자택에서 압류 후 관리전환”이라고 쓰였다. 비고란에는 “1991년 이후 위작논란 진행 중”이란 기록도 남아있다. 또한 천 화백이 1991년 4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소유의 ‘미인도. 천경자 작’으로 된 것은 위작이고, 가짜임을 분명히 밝혀둔다”는 내용의 자필공증확인서도 함께 전시됐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미인도’의 진위를 가리거나 특정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전시를 계기로 ‘미인도’가 논란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진위 여부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미술 작품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되짚어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품의 가장 정통성 있는 권위자가 작가인지, 미술관인지, 전문가 혹은 감정기관인지 아니면 대중의 믿음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에서 진품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미인도’는 여전히 공방 중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가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해 왔던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들을 상대로 고소·고발한 사건에 대해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검찰의 진품 발표에 위작을 주장하고 있는 천 화백 유족은 검찰의 결론에 불복, 지난 1월 27일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국립현대미술관 측 법률대리인 박성재 변호사(법무법인 민)는 “저작자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천 화백 유족 측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법적으로 판단해볼 때 저작권법상 (저작자를 표시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유족의 입장을 배려하고 논란을 더 이상 확대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