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 반곡지, 자연이 만든 데칼코마니, 카메라 셔터를 유혹

입력 2017-04-20 00:00
경북 경산 반곡지의 아름드리 왕버드나무가 이른 아침 거울 같은 수면 위에 반영을 드리우며 데칼코마니를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 분홍색 복사꽃이 더해져 환상적인 ‘무릉도원’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저수지를 향해 손을 뻗은 왕버드나무
압독국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조영동고분군
‘자연이 만든 연초록 데칼코마니 위로 화사한 복사꽃의 분홍빛 향기가 흩날린다.’

경북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의 자그마한 저수지 반곡지(磐谷池)의 봄 풍경이다. 반곡지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사진작가 등을 통해 알려진 뒤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크기만 보면 동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저수지이지만 화순 세량지, 서산 용비지와 더불어 봄철 출사지로 이름 난 3대 저수지에 꼽힐 만큼 큰 매력을 품고 있다.

2만5000㎡ 규모의 반곡지는 낚시터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팔뚝만 한 붕어가 심심찮게 낚여 강태공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사진촬영 명소로 유명세를 치르면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가야 하는 코스가 됐다. 입소문을 탄 때문인지 못 주변에 정자와 다리가 만들어지고 주차장도 말끔히 다듬어져 있다.

반곡지는 ‘미니 주산지’로 불린다. 저수지 둑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왕버드나무가 잔잔한 수면에 반영을 드리우며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여기에 만발한 복사꽃이 더해지면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한다. 반곡지가 있는 남산면 일대는 경산 최대의 복숭아 산지. 반곡리에도 복숭아 밭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연초록 왕버드나무와 어우러진 분홍색 복사꽃은 그대로 ‘꿈길’을 펼쳐놓는다. 복사꽃이 지더라도 반곡지의 아름다움은 손색이 없다. 왕버드나무 잎은 더욱 무성해지며 신록의 꿈길을 펼쳐놓는다.

왕버드나무가 늘어선 둑으로 들어서면 반곡지의 아름다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왕버드나무는 저수지를 향해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수면은 거울이 돼 그 모습을 고스란히 되비쳐준다. 그 속에서 연인들이 연신 셔터를 누른다. 고요하던 수면에서 한가롭게 자맥질하던 물오리 몇 마리가 동심원을 그린다.

왕버드나무의 수령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크기에 비춰볼 때 3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사목으로 늙어가는 왕버드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연륜을 자랑한다. 어떤 나무는 어른 두어 명이 양팔을 벌려야 맞닿을 정도로 굵다. 군데군데 상처를 품은 채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한다. 회오리처럼 휘휘 돌아간 나뭇결도 이채롭다. 늙고 거무튀튀한 가지 끝엔 연초록으로 물든 잎들이 빛을 발한다. 일부 나무는 속이 텅 빈 채 죽어가는 듯하지만 가지에서는 수백 년째 새싹을 피워내며 생명의 신비를 보여준다. 오랜 세월 반곡지를 지켜봤을 왕버드나무가 도열해 있는 둑길은 100m 남짓으로 짧지만 마음속에 커다란 봄 풍경을 간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카메라의 좋고 나쁨과 사진을 잘 찍고 못 찍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곡지를 배경으로 찍기만 해도 모두 작품이 되고, 이곳에 서면 누구나 모델이 된다. 반영을 찍으려면 해가 중천에 떠 물빛을 흐리게 하기 전인 이른 아침이 좋다. 한낮 햇빛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이파리도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반곡지는 복사꽃이 만발해 ‘고향의 봄’을 연상케 하는 봄이 지나면 여름에는 푸름이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에는 주위 산의 단풍을 저수지에 담으며, 눈 내리는 겨울에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경산은 1600여년 전 고대 초기 부족국가인 압독국(押督國)의 터전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간단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5대 임금인 파사이사금 23년(102년)에 안강의 읍즙벌국 및 삼척의 실직국과 함께 경산 땅에 있던 압독국의 왕이 항복해 왔다고 기록돼 있다. 4년 뒤에는 파사이사금이 압독 지역에 행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휼을 베풀고 두 달 만에 서라벌로 돌아왔다고 한다. 40년이 흐른 일성이사금 13년(146년)에는 압독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보내 토벌·평정하고 압독 사람들을 남쪽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삼국유사에서는 제6대 임금인 지마이사금 시절에 음즙벌국과 압독국을 정벌해 멸망시켰다고 전해진다.

임당고분군, 조영동고분군, 부적리고분군 등이 압독국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압독국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임당고분군에서는 1987년 금동관, 금귀고리, 금동신발 장신구, 은허리띠 등 5000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영남대 정문에서 도로를 건너 마주 보이는 곳에 높지는 않지만 봉긋 솟아오른 구릉이 시작된다. 구릉의 높은 곳에 올라 보면 구릉을 둘러싸고 작은 지천들 사이사이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금호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구릉은 경산시 임당동·조영동을 거쳐 압량면 부적리까지 이어진다.

긴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 곳곳에는 옛 사람들의 무덤인 다양한 형식의 고분이 다수 남아 있다. 구릉 지대가 농경지나 과수원으로 개간됐고, 그 주변에는 주택과 상가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경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