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女 마라톤’ 깼던 여성, 50년 前 번호 달고 또 완주

입력 2017-04-19 05:00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캐서린 스위처(배번 261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레이스 감독관 조크 샘플에게 저지당하자 그의 남자친구가 감독관을 밀어냈고, 이 틈을 이용해 스위처가 달리고 있다(왼쪽부터). 보스턴헤럴드
스위처가 17일(현지시간)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서 50년 전과 똑같은 배번을 달고 완주한 뒤 기념 메달을 잡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여성의 마라톤대회 참가가 허용되지 않던 1967년. 당시 20세의 시러큐스대 여학생이던 캐서린 스위처(70)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신청서를 냈다. 당연히 여성이 뛸 수 없으니 대회 참가신청서에 성별 기재란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서류 접수에 성공한 스위처는 배번(261번)까지 받았다.

그녀가 출발선에 서자 주변이 술렁거렸다. 어떻게 여성이 참여했느냐는 놀라움이었다. 결국 몇 ㎞쯤 달렸을 때 봉변을 당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레이스 감독관 조크 샘플이 “번호표를 내놓고 얼른 꺼지라”는 험한 말과 함께 상의를 붙잡는 등 그를 거칠게 저지했다. 그때 그의 남자친구가 감독관을 밀어내고 계속 달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스위처는 우여곡절 끝에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완주했다. 기록은 4시간20분이었다. 스위처는 최초의 공식 대회에 참가한 여성 마라토너가 됐다.

하지만 대회 측은 완주한 스위처를 실격 처리했고, 아마추어 육상연맹도 그를 영구 제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성 인권운동가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스위처도 여성의 마라톤 참가를 여러 차례 청원했다. 덕분에 1972년부터 보스턴 마라톤에 여성이 출전할 수 있게 됐고, 1984년에는 여자 마라톤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라이프지는 훗날 스위처가 저지당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세상을 바꾼 100장의 사진’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리고 17일(현지시간) 스위처는 다시 보스턴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CNN에 따르면 이날 스위처는 50년 전 잃어버릴 뻔했던 261번을 다시 가슴에 달고 4시간44분31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때처럼 그녀를 제지한 사람은 없었다. 대신 수많은 여성이 그의 배번 261번이 새겨진 상의를 입고 함께 뛰었다. 대회 측은 스위처의 배번 261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스위처는 “내가 당시에 뛰지 않았다면 아무도 여성이 그런 먼 거리를 뛸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본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