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무리 급해도 지역감정 부추겨선 안 된다

입력 2017-04-18 17:19
5·9 대선의 성격을 규정짓는 용어 중 하나가 ‘3무(無) 선거’다. 대통령 파면으로 여당 후보가 사라지면서 보수 대 진보 구도가 없어졌으며, 역대 선거에서 단골로 등장했던 야권 후보 단일화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대결이 옅어졌다는 점이 포함됐다. 현재 지지율 1, 2위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비롯한 모든 후보가 특정 지역에서 몰표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영남과 호남이 미는 후보가 판이했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선 후 국민 통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그런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지역감정을 들쑤시는 발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17일 대구를 찾아 “TK(대구·경북)는 우리 보수우파의 상징”이라며 “선거에서 지면 낙동강에 빠져 죽겠다”고 말했다. 그는 18일 울산, 부산 등지에서도 유사 발언을 이어가며 지역민심을 자극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전주 유세에서 “문재인은 우리 전북 인사들을 차별했다. 문재인은 대북송금특검을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호남 홀대론’을 노골적으로 꺼낸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상대를 향해 ‘영남 보수표 구걸 행위’ ‘부산 대통령’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지역정서를 노린 행위가 분명하다.

그간 우리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지역감정이 국가 발전의 장애가 되고 국민 통합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수없이 지켜봤다. 그러나 극심한 후유증을 초래하는 지역 간 갈등은 그곳에 사는 유권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정치인과 정당이 조장한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선동에 영남 유권자들이 뭉쳤고, 지역 비하 발언에는 호남과 충청 유권자들이 흥분해 표를 던졌다. 이 후과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 반면 과실은 정치인들이 챙겼다. 지역정서를 건드릴 경우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선거 때만 되면 후보와 정당이 앞장서는 것이다.

이번 대선만큼은 이 늪에 빠져선 안 된다. 5·9 대선이 어떤 선거인가.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으로 붕괴된 국정을 바로 세우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안보와 경제 위기를 돌파할 국가 리더십을 창출하는 중차대한 작업이다. 더욱이 다음 대통령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국회에서는 야당과 협치 또는 연정이 불가피하고 강력한 국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야만 한다. 당장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지역감정을 악용한다면 집권 이후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표일이 다가오더라도 모든 후보와 정당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절대 기대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