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봄의 세입자

입력 2017-04-18 17:22

겨울에서 봄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마중을 나가기도 한다. 나는 주로 옷 정리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유보하거나 앞당긴다. 몇 달간 나와 동거했던 겨울은 이미 옷상자 몇 개로 압축돼 있다. 겨울을 들어낸 자리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그 계절이 외투의 무게만큼이나 둔하고 묵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봄이나 여름이 TV나 책상이라면 겨울은 10자 장롱이나 킹사이즈 침대쯤 되는 것 같다.

육중한 겨울을 들어낸 자리에 봄이 들어왔다. 먼지를 동반해서 괴롭긴 해도 봄은 봄이다. 봄은 체구가 크지 않은데도 여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계절이라 방 하나를 금세 채운다. 그러고도 좁다는 듯 나를 집 밖으로 자꾸 밀어낸다.

봄나들이라는 건 어쩌면 집집마다 들어앉은 진짜 봄의 유세 때문에 생겨난 세입자들의 행렬인지도 모르겠다. 봄이 사람들을 군식구 취급하니 안에서 버틸 재간이 없지 않은가. 집집마다 사정이 비슷해서 봄이면 나도 부모님, 동생네와 함께 1박2일 나들이를 계획한다. 해마다 같다. 엄마가 이민이라도 갈 것처럼 거대한 짐에 먹을 것을 챙기고, 그걸 다 먹기 전에 우리는 본국으로 송환되는 것이다. 엄마가 “오이도 챙길까? 사과는?” 하는 걸 나는 겨우 말린다. 그래도 출발하면 당돌한 사과 몇 알이 무임승차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공범은 엄마다.

우리 가족의 봄나들이 사진을 보면 해마다 한 사람씩이 늘어나 있다. 최초에는 두 명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내가 추가됐고, 또 동생이 합류했다. 한동안 우리는 네 명이었다. 거기에 내가 데려온 식구, 그리고 동생이 데려온 식구가 더해졌고, 조카도 태어나 이제 일곱 명이 되었다. 꽃비 내리는 나무 아래 누워 식구 수를 헤아려보면 포만감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쓸쓸해지기도 한다. 먼 훗날 식구가 줄어드는 때도 올 테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들로 가라앉으면 누군가가 똑똑 내 이마를 두드린다. 흩날리는 꽃잎들이다. 나는 꽃잎들이 시키는 대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