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미사일 사태는 ‘쿠바 위기’의 슬로 모션”

입력 2017-04-18 05:03
사진=AP뉴시스

한반도 위기설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 핵·미사일 사태를 둘러싸고 쿠바의 ‘미사일 위기 사태’ 전례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전략무기의 존재를 둘러싸고 미국-소련 간 극한의 대치 끝에 새로운 타협의 돌파구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현재의 북한 위기도 극적 타결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북한 문제가 쿠바 미사일 위기와 연장선상에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소개하며 한반도를 둘러싸고 극단으로 흐를 듯한 ‘강 대 강 치킨 게임’의 바람직한 전개 방향을 전망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리트워크 우드로윌슨국제센터 수석 연구원은 NYT에 “(북한 문제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슬로 모션”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도발에 대해 분명하게 입장을 밝힌 현재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일간 전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급박하게 몰아넣었던 쿠바 위기와 ‘닮은꼴’ 상황이 한반도에선 훨씬 긴 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진행돼 왔다는 분석이다.

북한과 미국의 ‘잠재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는’ 상호 작용을 추적해 온 리트워크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강성) 보좌진은 김정은 위원장이 그의 목표를 위해 강행해 온 점진적 군사력 발전에 대해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보다 공격적(aggressive)으로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고삐를 조이면서 슬로 모션 구간의 속도가 보다 빨라진 셈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17일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였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외교·안보·경제 등 모든 부문에서 전방위 압박정책을 구사할 것임을 예고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설명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역점을 두면서 북한 문제를 사실상 방치한 데 따른 반작용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첨예한 대치 상황에서 많은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략적 견인’을 강조하고 있다. 전략적 견인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동시 개선을 통해 북한을 점진적으로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대북 억제력을 바탕으로 각종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 위기를 ‘관리’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균형적인 ‘관여’를 증가시켜 북한 스스로 핵무기 없이도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대북 압박과 포용이란 이분법을 넘어선 ‘선제적 접근법’이기도 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되돌아봐도 당시 구소련이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핵탄도미사일 배치를 강행하려 하자 미국은 전례 없는 강공책으로 전환했고, 동서 냉전은 일촉즉발의 핵전쟁으로 번질 위기를 맞았지만 극적으로 위기가 해소됐다.

이후 미·소 관계 역시 극적으로 개선됐는데, 미국과의 힘의 대결에서 열세를 절감한 소련은 당분간 대미 강경노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 역시 소련을 상대로 위험한 도박을 다시 벌이지 않았다.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미 백악관과 러시아 크렘린 사이에 직통 ‘핫라인’이 개설되며 시작된 대화 분위기는 이후 ‘데탕트’ 시대를 열며 동서 진영 간 전향적인 화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첨예한 갈등의 극적 전환이 북한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향후 전개과정이 주목된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