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한 달여 동안 파면과 구속, 기소를 한꺼번에 겪었다. 그는 여전히 “한 푼도 받은 게 없다” “억울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 양태는 과거 본인 또는 측근, 가족이 수사를 받았던 전직 대통령들의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혐의 중 하나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원 강제 모금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국정수행 혹은 공익사업 차원에서 기금을 모금하거나 재단을 설립한 사례가 존재한다. 미소금융재단(이명박정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기금(노무현정부), 대북 비료보내기 사업(김대중정부), 일해재단(전두환정부) 등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과거에도 기업 출연금으로 여러 사업을 벌였지만 지금처럼 문제된 적이 없었다”는 방어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기금과 재단들은 법적 근거를 두고 공개적으로 사업이 진행된 데다 설립 이후 운영에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본질적 차이가 있었다. 반면 미르·K스포츠재단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봐도 설립뿐 아니라 인사·운영 모두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다. 두 재단 의혹이 확산될 무렵 그의 수첩에 적힌 ‘BH 주도 ×’란 문구는 청와대 내부에서 말맞추기를 시도한 정황까지 보여준다. 헌법재판소도 탄핵 결정문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 필요했다면 공권력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측근 비리 역시 역대 정부에서 반복됐던 일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 홍업·홍걸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 등이 비리 혐의로 처벌됐다. 그런데 이들은 무대 위에 드러난 실세라 본인 위세만으로 이권 개입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최순실씨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이 존재 자체를 숨기려 한 점에서 대별된다. 최씨는 스스로 “나는 대통령 뒤에서 도와드리기만 하지(할 뿐) 없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고영태·박헌영씨 등 자신의 비선 인맥을 동원해 이권을 챙겼다. 최씨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대리인으로 내세운 이들의 말발이 대기업 등에 통하려면 필연적으로 청와대의 힘에 기생해야 하는 구조였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민원이나 부탁을 받고 사익 추구를 돕는 순간 대통령 본인도 국정농단의 공범이 되는 것”이라며 “여기에 과거 대통령들과 큰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朴, 法 무시한채 재단 설립·운영 전반 주도
입력 2017-04-1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