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민연금공단 본부 및 지역 사무실에는 국민연금의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안 찬성 결정을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포털 사이트 등에도 “국민 노후자금을 왜 부실 기업에 지원하느냐”는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대우조선 지원은 국책은행이 하는 것이고, 우리는 투자한 회사채 손실을 최소화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돈을 직접 지원하는 것도 아닌데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국민연금이 이날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전격 찬성하면서 대우조선은 예정대로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권 일각에선 대우조선이 P-플랜(단기 법정관리)에 돌입할 경우 쏟아질 비판을 피하려고 채무재조정안에 찬성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기금 수익 제고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었고, 책임소재 때문에 찬성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 채무재조정안의 본질은 대우조선 부실에서 출발한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의 전체 회사채 1조3500억원 가운데 3900억원(30%)을 들고 있다. 경영 악화로 회사채 상환이 불투명해졌다. 채무재조정안은 회사채 절반을 주식으로 바꾸고 절반은 3년 만기를 유예하겠다는 내용이다. 지금 당장은 회사채를 갚기 어렵지만 회사를 살려 갚아주겠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의 딜레마는 대우조선이 계속 존속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대우조선이 당장 청산되면 국민연금은 회사채의 6.6%인 257억원만 건진다. 대우조선이 계속 적자를 기록하다 망하면 이마저 회수하리란 보장도 없다.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해 회사채를 유예했는데 오히려 회수액이 더 적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도 선뜻 정부안에 찬성하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 합병 때 투자위원회를 열고 합병 찬성을 결정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투자위 회의에 외압이 있었다는 혐의가 드러났다. 홍완선 당시 투자위원회 위원장은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민연금은 정부안에 섣불리 찬성했다가 손실 최소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어 신중해야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23일 정부 채무재조정안이 발표된 후 계속 줄다리기를 벌였다. 결국 대우조선이 청산돼도 전체 회사채 투자액 중 1000억원은 보장하겠다는 등의 추가 제안을 끌어냈다. 대우조선이 망해도 국민연금은 1000억원 중 257억원을 확실히 건지는 게 보장된 셈이다. 당장 청산됐을 때 건질 수 있는 금액과 같아 밑져야 본전인 셈이 된 것이다.
P-플랜보다는 자율적 채무재조정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P-플랜 시 국민연금은 회사채 중 90%를 주식으로 바꿔야 한다. 대우조선이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 주식도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다. P-플랜에 돌입해 발주 취소 등이 발생한다면 대우조선 회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국책은행이 자금을 지원해 회생하기로 결정했다면 채권 절반의 상환을 보장받는 게 낫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P-플랜으로 가면 법원이 산은 추가 감자를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하지만 산은이 손해를 보는 게 국민연금의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굳이 남의 걸 깎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대우조선이 3년 후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조선업황 회복이 예상보다 더딜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이투자증권 최광식 연구원은 “대우조선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부실을 털어내고 확실히 이익을 창출하는 작고 단단한 회사로 거듭나야 한다”며 “그 이후 새 주인을 찾아주는 이벤트를 2019년쯤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국민연금을 왜 부실기업에?… “손실 최소화 위한 선택”
입력 2017-04-17 18:14 수정 2017-04-17 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