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의 부활’… 과거로 돌아간 터키

입력 2017-04-17 18:27 수정 2017-04-18 00:48
터키에서 개헌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17일 새벽(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국민투표 개헌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위). / 터키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안에 찬성하는 지지자들이 16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evet(찬성)’이라고 적힌 깃발과 터키 국기를 흔들고 있다(아래). AP뉴시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터키가 94년 만에 의원내각제를 버리고 대통령중심제를 택했다. 현 정권의 이슬람주의, 반(反)서방 기조, 분열 전략이 터키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3) 대통령의 1인 지배체제가 더욱 공고해진 가운데 향후 최대 17년까지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21세기 술탄(이슬람제국 최고 통치자) 대통령’의 탄생은 사실상 확정됐다.

1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개헌안 국민투표 개표 결과 찬성이 51.41%로 반대(48.59%)를 2.82% 포인트 앞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으로 터키는 새 시대를 시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근소한 차이로 개헌안이 통과되자 민심은 분열 양상을 띠고 있다. 터키 최대 도시인 앙카라와 이스탄불, 이즈미르뿐 아니라 마르마라 등 에게해 연안 도시에서 반대표가 많았던 반면 코니아, 카이세리, 요즈카트 등 내륙에선 찬성표가 무더기로 나왔다.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 국민의 63.19%, 네덜란드 거주 국민의 69.93%가 개헌에 찬성하는 등 재외국민들은 열광적 지지를 보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발생한 쿠데타를 강경 진압하면서 종교 갈등 프레임을 앞세우고 서방과의 분쟁을 강하게 돌파한 것이 주효했다. 개헌의 당위성보단 안팎의 적을 부각하는 분열전략으로 서민층 표심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개헌안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9년 임기를 마친 뒤 다시 대선에 도전, 최대 10년간 대통령 자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임기 종료 전 조기 대선·총선을 실시해 당선된다면 최장 2034년까지 권력을 쥐게 된다. 또 부통령 등 고위직과 사법부 임명권, 법률에 준하는 행정명령 발표 등 광범위한 권한이 주어졌다.

야당에선 선거관리위원회가 날인 없는 투표용지까지 유효표로 처리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을 두고 반발이 나왔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에르달 아크순가르 부대표는 “투표함의 37∼60%에 문제가 있다”며 “250만표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선거감시단은 “이번 선거는 평평하지 않는 경기장에서 치러진 셈”이라며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행보에 유럽 국가와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연합(EU)이 터키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를 비판해온 상황에서 양측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EU 가입 재검토와 사형제 부활 등을 내세웠다. EU는 사형제 유지 국가에 가입 금지 방침을 밝히고 있어 터키가 EU 가입을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스에 도착한 불법 난민을 터키가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경제적 지원과 터키 국민의 EU 무비자 여행, EU 가입협상 진행 등을 약속한 터키·EU간 난민송환 협정도 번복될 수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헌법 개정이 미칠 파급력을 고려해 터키 당국이 개정안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것을 요구한다”고 성명을 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간발의 차이로 찬성이 많다는 것은 터키 사회가 얼마나 분열됐는지를 보여준다”며 “정부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