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프로야구는 ‘힐만 매직’으로 뜨거웠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가 개막 6연패 후 7승1패로 급반등하며 팀 순위도 바닥권에서 공동 5위로 도약했기 때문이다. 힐만 감독은 치밀한 데이터 야구, 한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 토털 베이스볼로 팀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힐만 감독은 그동안 한국야구에서 보기 힘든 메이저리그식의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자주 애용하고 있다. 수비 시프트란 특정 타자 타구 방향을 예측해 타구가 많이 향하는 쪽으로 수비 위치를 옮기는 것을 말한다. 지난 12일 롯데 자이언츠전. 0-0이던 4회초 1사 1루에서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2루수가 유격수 자리까지 왔다. 결국 이대호는 유격수 병살타로 물러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5회초 1사후 강민호 타석 때도 비슷한 수비 시프트가 작동됐다. 배터리에게는 밀어치기보다 당겨치는 타구를 유도하기 위해 철저히 몸쪽 승부를 주문했다. 1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좌타자 이성열이 타석에 들어서자 유격수가 2루를 넘어 왔다. 이대호와 강민호, 이성열이 모두 당겨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간파한 작전이었다.
선수 기용에 있어선 1군 엔트리에 있는 야수 14명을 골고루 기용하고 있다. 최정을 제외하고 붙박이 선수가 없다. 1루수는 박정권과 한동민, 2루수는 김성현과 나주환, 유격수는 이대수와 박승욱이 번갈아 나선다. 타선에서도 정의윤과 김동엽이 그날 컨디션에 따라 4번으로 내보낸다. 이는 한화 김성근 감독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김 감독도 고정된 포지션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신성현이 3루수와 1루수, 강경학이 유격수와 2루수를 맡는 등 멀티플레이어를 선호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17일 “힐만 감독이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자극해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면서 “주전과 비주전의 전력 격차도 줄이는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사령탑 출신답게 힐만 감독은 믿음의 야구도 구사하고 있다. 마무리로 낙점한 서진용이 12일 롯데전에서 9회 1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다음날 9회 1점차 리드 상황에서 또다시 등판시켰다. 정의윤이 15일 한화전에서 대타로 나와 홈런을 친 뒤 힐만 감독의 가슴에 주먹을 날린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힐만 감독이 경기를 앞두고 부진했던 정의윤에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나를 쳐라”고 말한데 대한 장난기 넘치는 화답이었다.
이런 힐만 감독의 모습에 2008년 ‘노 피어(두려움 없는)’ 야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이 떠오른다는 말이 나온다. 선수단간 소통과 믿음을 강조하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경기스타일은 다소 다르다는 평이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로이스터 전 감독이 미국 스타일로 우직했다면 힐만 감독은 일본야구를 경험해본 만큼 세밀함이 있다”고 평가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힐만 매직’ 비룡을 날게 하다
입력 2017-04-18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