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아리마대 요셉은 주님의 시신을 자신이 소유한 새 무덤에 모셨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왜 좋은 새 무덤을 내놨냐고 핀잔을 주자, 요셉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이 주말만 잠깐 빌려 달라고 하셔서….” 물론 우스갯소리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부활 소식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2000년이 지난 오늘도 온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무자비한 박해가 따랐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박해가 끝나고 기독교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의 통치세력이 됐다. 그러자 교회는 스스로 부패했고 복음을 가감하거나 왜곡시켰다. 그리고 이에 항거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순교시켰다.
보헤미아 왕국의 얀 후스(1363∼1415) 프라하대학 총장도 그 선구자들 중 한사람이다. 그는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다” “교황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안내자다”라며 교황의 권위에 정면 도전했다. 그리고 끝내 화형에 처해졌다.
당시 성서는 라틴어로 돼 있어 신자들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라틴어로 성서를 읽은 지식인들은 왜곡된 복음을 바로잡기 위해 교황에게 항거했고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해 신자들의 손에 들려줬다. 이들의 순교는 100년이 지난 뒤 루터의 종교개혁에 밑거름이 됐다. 종교개혁은 신자 개개인을 신앙의 주체로 세워줬고 교황의 나라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되찾아 줬다.
종교개혁이 중시하는 관심사 중 하나는 직업관이다. 루터는 “일상의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관련이 있다”며 성직이 아닌 일반 직업도 거룩한 직업이 될 수 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칼뱅도 “직업 노동을 포함한 모든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야 한다”고 외쳤다.
개신교는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도 130여년 전에 개신교를 받아들여 놀라운 부흥을 이뤘다. 그러나 양적으로는 성장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 복음은 왜곡됐고 교회는 부패했다. 복음의 영향력은 예배당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할 일은 일상의 모든 직업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고백하고, 신앙생활의 영역을 삶의 모든 분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첫째, 지성인들이 나서서 진리의 왜곡과 교회의 부패에 대해 통렬히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 시대 신학자들이나 인문학자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교회 일만이 하나님의 일이고 직업은 생계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깨야 한다. 목회자(Professional Christian)들부터 인재와 자원을 교회 안으로 끌어모아 교회 규모를 키우는 ‘구심력 목회’를 지양해야 한다. 그 대신 전문인들(Christian Professional)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직업의 세계로 내보내는 ‘원심력 목회’를 지향해야 한다.
신자들이 영적 전쟁터인 삶의 현장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신자들이 각자의 직업을 통해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뤄나가게 할 것인지 목회와 설교의 방향, 교재를 다시 써야 한다. 종교개혁 현장에 가서 순교자들의 숨결을 느끼려 하지 말고 신자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 그들의 영적 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교회개혁의 전사(戰士)는 크리스천 직업인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벽돌을 쌓는 사람이 있고 벽을 쌓기 위해 벽돌을 쌓는 사람이 있다. 병원을 짓기 위해 벽돌을 쌓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벽돌을 쌓는 사람도 있다. 목적이나 방법이 잘못되면 성직도 세속적인 직업이 되고 하찮아 보이는 직업도 성직이 된다는 게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신자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나 처리하는 방법은 비신자들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우리의 일터에 하나님의 정의가 하수처럼 흘러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것이다. 지금 내가 일하는 일터가 내 사역지이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사역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 6:33)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새번역·고전 10:31)
이의용(국민대 교수)
[시온의 소리] 신앙생활 영역 넓히기가 교회개혁
입력 2017-04-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