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항문주위농양과 치루

입력 2017-04-18 00:01
이선호 구원창문외과 원장
1970, 80년대 고도 산업화 및 위생환경 개선과 함께 발생빈도가 뜸해진 감염성 질환이 최근 들어 다시 유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알고 보니 원인은 현대인의 면역력 저하에 있었다. 건강했을 때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균도 면역력 저하로 몸이 약해지게 되면 쉽게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회감염’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상포진 헤르페스 등 바이러스성 감염과 칸디다 등의 진균성 감염, 일반 세균성 감염질환에 이런 기회감염이 많다.

항문도 예외가 아니다. 항문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항문샘에 급성감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보통 감염질환이 생기면 위생관리를 잘못한 탓으로 단정하기 쉬운데, 항문주위 농양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니어서 더 주의가 필요한 감염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감염으로 피부 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항문 안쪽에 위치한 항문샘에 우연히 생긴 염증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이렇게 항문 안쪽에 염증이 생기면 약간 불편한 느낌만 들다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항문 주위가 점점 붉게 부어오르고 통증도 심해진다.

따라서 가능한 한 발견 즉시 항문주위 농양을 절개하고 배농(염증과 고름을 배출시키는)을 해주는 치료가 필요하다. 며칠만 방치해도 농양이 항문주위에 확 퍼지게 되고, 직장 안으로도 깊숙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항문주위 농양은 초기의 경우 국소마취 하에 환부를 절개하고 배농을 해주는 것만으로 대부분 잘 낫는다.

문제는 염증이 이렇게 일단 가라앉긴 했으나 가느다란 볼펜 심 모양의 루관(漏管)으로 피하에 남아 훗날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다. 이를 치루(痔漏)라고 한다. 치루는 평소 휴화산처럼 아무 증상을 나타내지 않지만, 여차하면 또 염증으로 발전, 루관에 고름이 차고 항문 주위로 퍼지며 부어오르는 병이다. 병의 뿌리인 루관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다.

항문주위 농양이 커지도록 방치하거나 오래 된 루관이 반복적으로 염증을 일으키게 되면 치루의 형태도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치루는 수술도 그만큼 어려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조기에 치료, 화근을 없애는 것이 좋다.

글=이선호 구원창문외과 원장,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