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진도 팽목항에 모였던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은 이제 목포신항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과 가족의 유해 수습을 기다리며 심신이 지친 이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봉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목포신항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경기도 시흥의 정형외과에서 일하고 있는 양수영(43) 물리치료팀장이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지러 온 것. 그는 참사가 있던 2014년에도 7개월가량 진도에 머물며 가족들의 의료 지원을 했다. 3년 만에 목포신항을 찾은 그는 간이 물리치료실을 차리고 조그맣게 현수막을 내걸었다.
15년 경력의 물리치료사인 양 팀장은 2014년 4월 19일 진도를 찾았다. 처음에는 곧 떠날 생각이었지만 머물면 머물수록 가족들이 눈에 밟혔다. 결국 그는 물리치료사 중 가장 마지막으로 진도를 떠났다.
유가족들은 처음엔 아무도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양 팀장의 설득으로 한두 명이 찾아와 치료를 받더니 나중에는 가족들이 알아서 왔다. 치료를 받으면서 개인적인 하소연도 털어놨다. 그렇게 이어온 인연이 벌써 3년이다. 2주기 때도 병원일로 바쁜 와중에 짬을 내 진도를 찾았다. 이번에 양 팀장이 한달음에 목포를 찾은 것도 이러한 친분 때문이다.
목포신항에서 2주 넘게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상태는 많이 악화돼 있었다. 양 팀장은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다 보니 몸이 많이 경직돼 있다”며 “가족들이 진도에 있을 때보다 혈색도 나빠지고 심신이 더 약해진 상태”라고 걱정했다.
병원에서는 각종 물리치료 기계, 장비를 이용했지만 이곳에서는 ‘스킨십’을 최대한 늘리기로 했다. 양 팀장은 “손을 많이 쓰는 치료를 위주로 가족들과 교감하고,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려고 한다”며 “병원일 때문에 일주일 정도밖에 머물 수 없지만 있는 그동안만이라도 힘이 돼주고 싶다”고 말했다.
목포신항에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도 양 팀장과 같은 마음이다. 조은하(19)씨는 SNS에서 자원봉사자가 더 필요하다는 글을 읽고 달려왔다. 노란 리본 만들기에 한창이던 조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같은 고등학생이라 마음이 더 아팠다”고 전했다. 옆에서 노란 리본 스티커를 만들고 있던 김모(22)씨도 “힘들어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말했다.
목포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회원인 김영아(49·여)씨는 세월호 인양 후 네 번째로 자원봉사에 나섰다. 김씨와 함께 온 친구 최혜순(49·여)씨는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어서 왔다”고 전했다.
자원봉사 부스 옆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1학년 수련회 단체사진이 걸렸다. 자원봉사자 중 몇몇은 ‘꽃처럼 예쁜 아이들이 꽃같이 예쁠 나이에 별이 되어 버렸다’는 현수막 문구를 되새기며 묵념을 했다.
목포=최예슬 구자창 이재연 손재호 기자 smarty@kmib.co.kr, 사진=최예슬 기자
“피폐해진 세월호 유가족 건강 챙겨주러 다시 왔어요”
입력 2017-04-1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