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열어 보니 우리나라 명패는 없었다. ‘4월 경제위기설’을 불러 온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가 걷혔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여전히 한국은 미국의 관찰대상국이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시간으로 지난 15일 ‘주요 교역 상대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매년 2회 발표하는 환율 보고서는 교역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가름하는 잣대다.
공개된 환율 보고서를 보면 환율조작국 요건에 맞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단 한 곳도 없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면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게 첫 번째다.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가 3%를 초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개입 판단 기준인 GDP 대비 달러 순매수 비중이 2%를 넘어서면 환율조작국으로 규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277억 달러의 대미 흑자와 7.0%의 GDP 대비 경상흑자를 기록해 2가지 요건을 충족했다. 하지만 GDP 대비 달러 순매수의 경우 -0.5%로 요건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달러를 많이 팔았다는 얘기다. 앞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희박하게 봤다. 예상이 맞은 셈이다.
대신 2가지 요건을 충족하면서 한 등급 아래인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되는 상황은 피하지 못했다. 관찰대상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모두 6개국이다. 중국 일본 독일 스위스 대만까지다. 지난해 10월 환율 보고서에서 지정한 관찰대상국 명단 그대로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한 덕분에 살아나고 있는 우리나라 수출에 제동이 걸리는 사태는 면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통상적으로 무역제재 조치가 뒤따른다. 미국이 1988년 종합무역법을 발효한 뒤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했을 때의 통상 보복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미국 정부는 ‘슈퍼301조’ 발동으로 특정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과도했던 달러화 약세도 차차 강세로 되돌아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내 2차례 추가 금리인상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수출로만 보면 호재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이 북핵 관련 문제 합의 해결 가능성이 커지면서 동아시아 지정학적 긴장감도 완화되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은 1130∼1140원대 등락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는 10월 발표될 다음 환율 보고서의 내용은 전혀 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조작국 지정은 이를 통해 무역 이득을 보자는 게 목적인데 차기 정부도 안 들어선 현 상황에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봤을 것”이라며 “보류라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우성규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한국 환율조작국 피했지만 10월엔 다를 수도
입력 2017-04-1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