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맹경환] 한·중, 사드 이후를 생각할 때

입력 2017-04-16 18:46

돌이켜보면 베이징에서 생활한 3년 가까운 시간은 한·중 관계가 정점을 지난 기간이었다. 5000년 역사상 이렇게 중국이 한국에 우호적이고, 중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친절한 적이 있었을까 싶다.

아무래도 정점 중의 정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9월 천안문 열병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열병식을 앞두고 중국 외교부 관리들의 가장 큰 관심은 박 전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여부였다.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도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할 것 같으냐”는 질문이 많았다. 당시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 참석을 확정한 해외 지도자 중 그럴듯한 인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일했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열병식의 흥행 및 중국 체면과 큰 관계가 있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에 이어 천안문 망루에 앉아 열병식을 지켜봤다. 중국에 진출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시에는 중국에 무슨 얘기를 해도 알아서 다 해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정점은 지나봐야 그때가 정점이었는지 알곤 한다. 한·중 관계가 급전직하한 것은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어진 한국과 미국의 사드 배치 결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중국에 공을 들였던 가장 큰 이유는 도발하는 북한을 막는 데 중국이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였다.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중국의 태도에 실망했을 것이다. 사실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이 우리 말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이 ‘징벌(懲罰)적 차원’이라고들 한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면 중국의 이해를 거스르는 다른 나라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만과 일본, 노르웨이, 몽골 등에 대해 중국은 늘 경제 보복으로 대처해 왔다. 하지만 경제 보복의 대상이 된 국가들은 대체 시장을 찾았고 빈번한 경제 보복은 중국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만 키우는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맞서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 강대국으로 키우려는 시도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드로 인한 한·중 갈등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중국도 한·중 관계의 파탄을 원하지 않는다. 주변국 가운데 한국을 제외하고는 중국에 우호적인 나라가 없다는 점을 중국도 잘 알고 있다.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 포럼이 지난 3월 열렸지만 예년과 달리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맥 빠진 행사가 돼버렸다. 때문인지 중국 정부가 반한(反韓) 시위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고, 관영 언론의 과격한 보도와 논조가 나오지 않도록 사전 검열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도 출구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 달 9일 열리는 한국의 대선이 중요한 기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의 19대 대통령이 특사를 파견하거나 대통령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일괄적으로 한·중 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해 각 대선 후보 측을 연쇄적으로 만난 것도 한국 차기 정부의 의중을 떠보려는 목적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정부 간 갈등은 봉합될 수 있지만 문제는 민심이다. 중국 관련 뉴스에 달린 한국의 온라인 댓글을 보면 한국 사람들의 반중(反中) 정서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또 최근 아산정책연구원 조사 결과에서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가 일본보다 낮게 나왔다. 언론 통제가 가능한 중국이라도 한국에 대한 중국인의 반감을 과거로 되돌리기는 힘들 것이다. 사드 이후가 더 걱정인 이유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