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러시아 국민음악파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로 평가받는 모데스트 무소륵스키가 유일하게 완성한 오페라다.
보리스 고두노프(1552∼1605)는 황권 찬탈의 야심을 품고 황태자를 살해한 후 그 망령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이한 실존인물. 이 작품은 고두노프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다뤘다. 국립오페라단은 국내 오페라단 중 처음으로 이 작품을 제작, 오는 20∼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다. 국내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는 것은 1989년 러시아 볼쇼이극장 내한 공연 이후 28년 만이다.
이 작품은 버전이 여러 개다. 이번에는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가 선택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두 번째 개정본을 무대에 올린다. 베이스 고두노프와 대척점에 있는 테너 그리고리의 역할이 매우 커진 것이 특징이다. 쉽지 않은 그리고리 역할은 2016-2017시즌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 깜짝 데뷔한 테너 신상근(43·사진)이 맡았다.
14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그리고리라는 인물은 매우 복잡다단한 캐릭터로 오페라 속 전형적인 테너 역할과 다르다. 연기와 음악은 물론 언어적으로 어렵지만 한국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행히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게 세 번째라 낯설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는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상근은 국제무대에서 한국 테너의 위상을 드높이는 성악가다. 한양대 출신인 그는 그동안 독일 칼스루에 바드 국립극장, 하노버 국립극장의 전속 솔리스트를 거치며 주로 유럽 무대에서 활동했다. 최근 성악가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메트에서 ‘라보엠’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으로 데뷔했다. 한국 테너로는 김우경 이용훈 김재형에 이어 네 번째다.
그는 “2015년말 메트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한 번도 서보지 않은 무대라 궁금했다. 유럽 오페라극장과 비교해 엄청난 규모(3816석)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사실 메트에 갈 때 출연 기회를 보장받은 커버(대타)로 계약했다. 두 번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던 만큼 앞으로 다른 기회가 또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의 음역대는 원래 밝고 경쾌한 ‘레제로 리릭’이지만 점차 중량감 있는 ‘리릭 스핀토’로 바뀌고 있다. 성악가는 나이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소리가 바뀌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는 레퍼토리를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오랫동안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는 “테너는 다른 성악가에 비해 생명이 짧다. 젊을 때 문제없던 고음도 나이가 들면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만큼 표현력이 좋아지는 만큼 역할을 잘 선택하면 문제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노블아트오페라단의 ‘리골레토’(2013)와 라벨라오페라단의 ‘안나 볼레나’(2015) 두 차례만 국내 무대에 섰다. 하지만 올해는 ‘보리스 고두노프’에 이어 5월 12∼14일 무악오페라단의 ‘토스카’에 출연하며 한국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테너 신상근 “어려운 작품이지만 한국 무대라 선택”
입력 2017-04-17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