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한 고비를 넘겼다. 산업은행의 한 발 양보에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의 채무재조정안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사채권자 집회에서 대우조선 회생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연금은 14일 실무급에서 작성한 채무재조정 합의문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제시한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한 것이다. 전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전격 회동한 뒤 “협의점을 찾았다”고 밝힌 결과다. “현 상태에서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면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감내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국민연금의 전향적 변화에는 산업은행의 한 발 양보가 있었다. 산업은행은 출자전환하지 않는 회사채(전체의 50%)의 만기를 3년 연장해주면 상환을 보장한다는 문서를 써주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국민연금에 회사채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의 만기를 3년 연장해주면 만기 연장분의 상환을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상환우선권을 주고 만기가 다가오면 별도 계정으로 관리하는 에스크로(거래대금 예치) 계좌에 돈을 넣어 상환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산업은행의 보증’을 요구했다. 조선업 불황이 계속됐을 때 국책은행이 직접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강 본부장과의 회동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문서로 된 확약서를 써줄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양측 실무진은 문서 형식과 문안 등을 놓고 장시간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합의에 이르렀다. 국민연금은 주말에 투자위원회를 열어 채무재조정에 동의하는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의 동의로 대우조선이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에 돌입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금융 당국은 지난달 23일 대우조선에 2조9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채권자들에게 자율적 채무재조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우조선 회사채 1조3500억원 가운데 3900억원(29%)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부정적 입장을 보여 왔다. 오는 17∼18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국민연금의 반대로 수용안이 부결되면 대우조선은 ‘P-플랜’에 들어가야 했다.
국민연금에 이어 다른 사채권자도 채무재조정에 응할 것으로 보인다. 우정사업본부와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증권금융 등은 채무재조정안에 찬성하는 쪽으로 내부 입장을 정했다. P-플랜에 들어가면 채무재조정보다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조정안이 합의되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다음 달까지 대우조선에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한편 대우조선 노조는 이날 오전 전북 전주의 국민연금 본사를 찾아 “대우조선 모든 구성원과 가족들은 워크아웃에 버금갈 정도로 조기 정상화를 위해 뼈를 깎는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다”며 채무재조정 합의를 호소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지난 6일 전 직원 임금 10% 삭감과 무분규를 약속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대우조선 기사회생… ‘채무재조정안’ 사실상 합의
입력 2017-04-15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