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의료발전 그리고 네트워크 병원

입력 2017-04-16 19:42 수정 2017-04-17 15:00

모든 산업이 그렇듯 의료서비스도 의료기술 발전과 변화에 따라 이를 공급하는 의사의 기능과 역할은 계속 변화해 왔다. 가내 수공업 형태의 1인 의사를 중심으로 제공되던 의료서비스는 19세기 들어 의료기술, 그 중에서도 수술, 소독, 마취 등 의과학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다수 의료인이 협업하는 대형병원 출현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형병원들은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의료정보의 집적(集積)을 가속화 시켜 의료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어 왔다.

이와 같은 공간 집중형태의 대형병원과 달리, 최근 공간 분산형태의 대형병원이 출현했는데 이것이 네트워크 병원이다. 네트워크 병원은 과거 대형병원에서만 이뤄지던 의료인 간 정보공유, 의료기술 공동연구 등을 통한 의료서비스 수준 제고, 대량구매를 통한 원가절감 등이 이제는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분산된 공간에서도 이뤄짐을 의미한다. 이는 정보통신 발전에 따라 의료정보의 집적이 더 이상 한 공간에서만 이뤄질 필요가 없게 됐고, 통신을 통한 원거리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 공급자에 의해 자생적으로 출현한 네트워크 병원에 대해 2012년 당시 입법자는 충분한 토론 없이 졸속으로 의료법을 개정해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개정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의하면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의료기관을 중복 개설·운영할 수 없고, 위반할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이 의료법 개정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네트워크 병원이 지급받은 환자 본인부담금을 포함한 모든 진료비가 부당이득이라면서 이를 환수하기 시작했고, 수사기관은 사기죄로 입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네트워크 병원 개설자들은 한순간에 자신의 병원이 도산되는 등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하게 됐다. 이는 네트워크 병원이 마치 무면허의료행위나 일삼는 사무장병원과 같이 반사회질서행위를 하는 집단으로 매도당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네트워크 병원임이 의심되는 사건 당사자 의료인은 하나도 빠짐없이 위 의료법 조항의 위헌성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2016년 3월 공개변론을 연 뒤 1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네트워크 병원도 사무장병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전제에서 한 요양급여비 환수처분에 대해 이를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한바 있다. 위 판결은 의료인이 직접 개설한 네트워크 병원은 불법성에 있어서 사무장병원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네트워크 병원에서의 의료행위가 국민에게 정당한 요양급여를 제공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동시에 네트워크 병원 개설·운영이 반사회적이거나 그에 준할 정도로 보호가치가 없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국민건강보험법상 보험체계를 교란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위와 같은 판시는 그 이후 선고된 수건의 하급심 판결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네트워크 병원은 의료공급자와 의료소비자 간의 의료서비스 거래 과정에서 자연발생 된 것으로, 의료공급자 측에서 소비자 후생의 극대와 접근가능성이 높고 안정적 퀄리티 병원의 공급, 규모의 경제에 의한 서비스 수가의 하향, 서비스 수가 하락에 의한 보험제도 편입 범위 확대로 의료의 공공성 증대 등 순기능을 제공했다. 이 순기능 때문에 의료소비자에게도 합리적 선택의 대상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순기능 측면을 도외시하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료영리화의 공포심에 기대어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다. 오히려 네트워크 병원 등장이 의료서비스 발전의 불가역적인 역사적 흐름이라 볼 수 있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제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의료공급자와 의료소비자가 상호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한 네트워크 병원에 대해 제도적으로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이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입법을 해 규제 일변도로 나가고, 그 사이 네트워크 병원에 사무장병원과 같은 불법성의 오명을 뒤집어씌워 의료인이 한 정당한 진료 대가까지도 환수한다면 지금 의료서비스 발전에 관한 시대적 요구는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다.

증기기관을 처음 발명해 자동차산업 발전의 토대를 갖췄던 영국이 자동차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철도업자와 마차 주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레드 플래그 액트 때문에 자동차 산업의 일류가 되지 못했다는 점은 오늘날 의료산업을 규제하는 이들이 되새겨볼 문제다. 특정 집단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미래 산업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은 아닌지.

김주성 신&유 법률사무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