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민적 공분을 낳은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과 경기도 평택 원영이 사건 피고인들이 대법원에서 중형을 확정받았다. 충격적인 여성·아동 대상범죄가 알려질 때마다 추모와 재발방지 목소리가 높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좀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법적 처벌을 통한 개선은 한계가 있고, 스트레스·대화 단절 등 한국 사회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수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강남역 살인사건 가해자 김모(35)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13일 그대로 확정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에서 약 30분간 홀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이 들어오길 기다리다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조사 결과 그는 여성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있었다.
7살 원영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사체를 은닉한 부모에게도 이날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원영이 계모 김모(39)씨, 친부 신모(39)씨의 상고심에서 각각 징역 27년과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은 2015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원영이를 난방 없는 화장실에 가두고 락스를 뿌려 숨지게 했다.
지난해 불거진 두 사건은 여성·아동 상대 범죄의 대표적·극단적인 사례로 지목돼 왔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김씨가 오랜 시간 힘없는 여성이 나타나길 기다려 계획적으로 범행했다는 점이 드러나며 여성혐오 논란까지 낳았다. 원영이를 화장실에 감금해둔 계모는 친부에게 “저 ×× 갖다 버려, 같이 못 사니까 고아원 보내” “니 ×× 나랑 있는 한 평생 저러고 살 테니 그런 줄 알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범죄는 증가 추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사범 숫자는 2013년에 비해 38% 늘었다. 이 기간 가정폭력사범은 3배가 됐고 아동학대사범은 6배로 증가했다. 심각성을 인식한 검찰은 지난해부터 전국 4대 검찰청에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신설하고,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사건처리기준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여성아동범죄 전담검사들의 워크숍에서 우수 수사 사례가 발표됐다.
지난해 정부는 장기결석하거나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동 등 1만7000여명을 점검해 학대 사례 90여건을 조기 발견했다. 그해 11월에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돼 입양기관 종사자 등을 신고의무자로 추가하고 신고자 보호를 강화하는 등 사회감시망을 넓혔다. 그 결과 학교 교직원과 의료인 등 신고의무자 신고는 2015년 4900건에서 지난해 8302건으로 69.4% 증가했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대응팀 변호순 팀장은 “사람들이 그동안 훈육이라 생각하며 넘어갔던 학대를 범죄라고 인식하게 됐다”며 “하반기부터 아동행복이음 사업을 실시해 장기결석하는 아동에 대한 학대를 조기 차단하는 등 사전적 예방을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은 계속 돼야 하지만 제도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정부나 수사 당국이 먼저 알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제도적인 보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무력감도 종종 찾아든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 여고생의 초등학생 살인사건에서 볼 수 있듯 강남역 살인사건과 원영이 사건 이후에도 조현병을 운운하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계속된다는 토로였다. 이 관계자는 “스트레스로 가득한 한국사회 분위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관계 단절이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잔혹한 범죄로 타인, 특히 여성과 아동을 숨지게 한 경우에도 좀처럼 사형 선고가 이뤄지지 않는 현상을 되짚어 보자는 여론도 있다. 현재 양형기준은 살인의 형량 범위를 보통 징역 10∼16년으로 정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현재의 살인범죄 처벌 수준이 적정한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을 파악해 사건처리기준 설정에 참고하겠다며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글=이경원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약자’ 노린 범죄… 대책은 그때뿐 되레 더 는다
입력 2017-04-1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