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의 노란 리본이 바닷바람에 쉬지 않고 나부꼈다. 리본이 매달린 철제 펜스 너머 300m 뒤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세월호가 누워 있었다. 펜스를 넘어 50m 앞까지 다가가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13일 세월호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에서는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 취재진이 선체 정리업체 코리아샐비지의 세척 작업을 지켜봤다. 눈앞에 다가온 세월호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였다. 1091일 전 4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거친 물결을 가르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새하얗던 배 상단은 녹이 슬고 이물질로 뒤덮여 원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인양을 위해 배 이곳저곳에 뚫은 구멍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업자들은 고가 작업차를 타고 수직 높이 22m에 달하는 세월호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녹슨 표면을 씻었다. 고압 세척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선미를 때리자 이물질이 떨어져 나가며 붉게 녹슨 맨몸이 드러났다. 20여분간 물을 맞은 갑판도 본래의 초록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가족 19명이 작업을 지켜봤다. 혹여나 작업 과정에서 배가 훼손될까봐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선체를 뒤덮고 있던 오물이 하나씩 씻겨 내려가며 부식된 선체가 맨 모습을 드러내자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탄식이 나왔다. 한 유가족은 “물로 뿌려대면 유품이 떨어져 유실될 수도 있을 텐데”라며 발을 굴렀다. 실제로 작업 도중 집업 후드티 한 벌과 담요 두 장이 선체 외부에서 발견됐다.
뒤틀리고 구멍 난 선체를 보며 울분을 토한 이들도 있었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 분과장은 “인양에 성공했다는 게 맞는 말이냐”며 “배 4∼5층이 다 찌그러진 것을 보면 이게 제대로 인양된 건지 의문”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장씨는 “지금도 배에 변형이 오고 무너지고 있을 것”이라며 “배를 눕혀놓으니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수습자 가족들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배가 더 망가지기 전에 수색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초조함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세월호에서 300m 떨어진 펜스 너머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3주기(16일)를 앞두고 이곳을 찾은 추모객들이 단 노란 리본이 펜스에 빼곡했다. 100명 넘는 추모객은 3년 만에 돌아온 세월호 앞에서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침묵이 무겁게 부두를 짓누르고 있었다. 펜스를 손으로 붙잡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세월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간간이 “하이고…” 옅은 탄식이 침묵 사이로 바닷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남편과 함께 목포신항을 찾은 남모(63·여)씨는 “립스틱 바르고 온 게 미안해서 누가 볼까 얼른 닦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리본을 가져가기만 하는 것조차 미안해서 다음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며 노란 부직포를 말아 리본을 만들었다. 남편 박모(64)씨도 투박한 손놀림으로 아내가 만든 리본에 줄을 달았다.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그는 “어제도 중학생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러주고 왔는데 그 비슷한 나이의 팔팔한 아이들이 저곳에서 생명을 잃었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에서 온 남동원(73)씨는 “우리 자식들을 보니까 눈물이 나서 말을 못하겠다”며 “펄을 모조리 뒤져서라도 얼른 나머지 9명을 저기서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펜스에 묶인 노란 리본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만지던 차영애(69·여)씨는 “세월호를 보니까 가슴이 먹먹하다”며 “마을 친구들이랑 목포 유달산 나들이를 왔는데 세월호가 이곳에 있다는 말에 안 들를 수가 없어서 왔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세월호에 인사를 마친 추모객들은 목포역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에서 누군가가 “우리가 이렇게 가슴 아파하니까 그래도 한이 좀 풀렸으면…”이라며 가슴에 손을 얹자 주변에는 숙연함이 맴돌았다. 추모객들이 떠나고 해가 지자 세월호는 다시 고요한 어둠 속에 잠겼다. ‘빨리 돌아오세요, 가족들 품으로’라고 적힌 리본이 세월호를 향해 날아가듯 나부꼈다.
목포=최예슬 구자창 이재연 손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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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주기] “아이들 아직 안에 있는데… 너무 참담하다”
입력 2017-04-13 18:59 수정 2017-04-14 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