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 상향 조정은 체감경기 반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기하강 흐름이 둔화됐다’ 정도로 볼 수 있다. 한은은 경기가 지난해 4분기 바닥을 쳤는지도 자신하지 못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의 4개 대기업에 몰려 있는 설비투자 개선세도 국민경제 전반과는 상관없는 얘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3일 간담회에서 “IT업종이 호조를 보이며 설비투자 실적이 상당히 늘었다”고 했다. 한은은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기존 2.5%에서 6.3%로 대폭 높여 잡았다. 문제는 몇몇 대기업만 누리는 호황이라는 점이다. 한은 장민 조사국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등 D램과 OLED 가격 상승에 혜택을 본 4대 기업의 투자가 늘어난 탓”이라고 밝혔다. 이마저도 글로벌 IT업황의 호조가 주된 요인이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가 지긋지긋한 ‘저성장의 늪’을 탈출했는지도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장 조사국장은 “단기적으로 보면 1분기 지표가 지난해 4분기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기조적으로 판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발 ‘사드 갈등’과 ‘북한 리스크’ 확대 등 경기를 끌어내리는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은은 이번 수정전망에서 중국의 무역제한 조치가 우리 경제 성장률을 0.2% 포인트 깎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도입했다. 올해 중국 관광객이 30% 줄고, 대중(對中) 수출이 2% 감소할 것이란 예측을 넣었다. 이게 확대될 경우 성장률은 다시 떨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도 한은의 성장률 상향 조정이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과 거리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LG경제연구원 강준구 연구위원은 “내수의 하향 흐름이 반등했다기보다 잠시 정체된 상태에서 수출이 호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위원은 “일부 업종의 수출 회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산업비중 조정 등 구조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몇몇 대기업에 의존한 투자나 외부 요인에 따른 수출 증가보다 내수 확대, 잠재성장률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총재도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해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하고, 지출 측면에선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상환부담을 줄이며 주거비와 교육비를 낮춰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 총재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 총재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자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불균형 조정을 논의하면서 당장 미국이 중국과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확률은 낮아졌다. 하지만 이번 ‘소나기’를 피해도 제2, 제3의 환율 압박이나 대미 경상수지 흑자 억제정책이 나올 수 있다. 글=우성규 홍석호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한국 경제 봄바람? 아직은 ‘살얼음판’
입력 2017-04-1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