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행과 관(官) 주도로 이뤄지던 기업 구조조정의 패러다임을 자본시장 주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정부가 내놨다. 이해당사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진 최근 구조조정 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의 채권을 사모펀드(PEF)가 산 후 경영정상화에 나서는 방안 등이 활성화된다. 다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황이라 대우조선해양 같은 대기업에 적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신(新)기업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 당국은 외환위기 때부터 계속된 기존 구조조정 방식의 효율이 떨어진다고 본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자금을 대부분 은행에서 끌어왔다. 정부가 은행을 움직이면 신속한 구조조정이 가능했다.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회사채·기업어음(CP) 등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확대됐다. 구조조정 과정에 동상이몽도 많아졌다. 최근 금융 당국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50%를 출자전환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국민연금공단이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은행 뒤에 버티고 서서 구조조정을 하면 정치권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부작용도 있다. 구조조정을 시장 논리로 하기 어려워진다. 은행 주도 구조조정은 돈을 빌려준 담당자가 책임을 피하려고 구조조정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은행은 대손충당금 부담을 피하려 하고 기업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등 각자의 이해관계가 부합해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측면도 있다.
다만 한국 현실에서 사모펀드가 구조조정을 주도하기엔 한계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 사모펀드를 다 합쳐도 5조2000억원 정도로 규모가 작다. 금융 당국은 우선 국책은행, 시중은행, 연기금 등 출자를 통해 8조원 규모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국책은행 등이 4조원 마중물을 붓고, 민간자금 4조원을 매칭 투자로 끌어들인다. 당분간 자본시장을 통한 중견기업의 구조조정 촉진에 주력할 계획이다.
채권은행의 구조조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기업신용위험평가도 깐깐해진다. 은행 내부 신용위험평가위원회에 외부위원(산업전문가)을 포함시킨다. 부실기업을 적기에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한 은행 담당자를 포상하도록 성과평가체계도 개선한다. 신용평가에 따라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1년마다 연장 여부를 재평가 받아야 한다. 은행이 부실채권 털어내기를 미루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또 기존엔 은행이 채권을 비싸게 팔려 하고 매수자는 싸게 사려고 맞서다 매각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가 가격을 산정해 제시한다.
한편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날 저녁 대우조선해양 문제 논의를 위해 전격 회동했다.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이 막판 채무 재조정안에 극적으로 합의할지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14일 채무 재조정안 수용 여부를 최종 발표할 계획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기업 구조조정, 앞으론 자본시장이 주도한다
입력 2017-04-14 00:02 수정 2017-04-14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