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한민수] 노마드 지지자

입력 2017-04-13 17:35

역대 대선에서 집권을 노릴 만한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이처럼 한순간에 급등한 적은 없었다. 꾸준하게 유지해 오거나 등락을 거듭하더라도 일정 기간 숙성을 거친 다음에 오르는 것이 여의도 정치의 패턴이었다. 그런데 불과 보름 만에 3배가 뛰었다. 정치 테마주가 날뛰는 주식시장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 얘기다. 이로 인해 올해 초부터 4개월 동안 유지돼오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대세론이 깨졌다.

그런데 안 후보의 지지율에는 남과 다른 ‘특징’이 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해 4·13총선 때 녹색바람을 일으킨 그는 21%로 문재인 후보(17%)를 앞섰다. 하지만 그해 6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후보로 부각된 이후 올해 2월까지 10%를 돌파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다. 반 전 총장이 사퇴한 뒤에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론조사군(群)에 포함되자 반등하지 못했으며 3월 말이 돼서야 19%로 올랐다. 문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안희정 충남지사를 연달아 꺾은 시기와 맞물린다. 이어 이달 들어 각 당의 후보가 확정되자 지난 4∼6일 조사에서 35%를 얻어 38%의 문 후보를 턱밑까지 쫓아갔다. 다른 여론조사의 추이도 비슷하다. 안 후보 지지층의 다수를 중도와 보수가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공통적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들 유권자를 ‘노마드(nomad) 지지자’라고 부른다. 유목민처럼 한 후보를 고정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반기문→황교안→안희정→안철수’로 옮겨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끊임없이 대선 주자 쇼핑을 하고 다닌 셈”이라고 했다.

반면 문 후보 지지층에는 크게 변동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뒤에는 30%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율이 50%를 넘나들 때도 그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상승하지 못했다. 오히려 당 지지율을 밑돌았다. 문 후보 지지자의 절대 다수가 민주당 지지층이며 그 이상으로의 확장이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양강 구도가 지속될 경우 승부는 두 후보의 주축 지지층을 이루고 있는 ‘정착민 유권자’와 ‘유목민 유권자’ 간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의 고정 지지층과 유동성은 높지만 대체재가 마땅찮은 안 후보의 지지층이 당장 어느 한쪽으로 쏠릴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변수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우선 투표일까지 현 지지세를 유지하면서 플러스알파를 어느 후보가 더 확보하느냐다.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20% 안팎에 달한다. 선거 당일 이들이 문재인과 안철수의 기표란 중 어느 곳을 찍을지가 관건이다. 문 후보 측이 우클릭을 하고 안 후보 측이 호남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비호감이 적은 안 후보 캠프에서 기대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극적 투표층의 향배가 당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문 후보 캠프는 현재 단순 지지율에서는 안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것으로 나오지만, 적극 투표층에서는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후보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중도·보수 성향에 따라 지지 후보를 수차례 바꾼 노마드 유권자 입장에서는 정착민 유권자에 비해 반드시 투표장에 가야 할 이유가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들이 더 몰려갈 것이라는 반론도 있는 만큼 두 후보의 셈법 중 어느 게 적중할지 가늠해보는 것도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한민수 논설위원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