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의 경제 공약은 4차 산업혁명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저마다 자신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적임자임을 자처한다. 정작 기업인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에 큰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며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 대응방안이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치인들은 표를 얻으려고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라며 “절박한 쪽이 더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선 후보들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이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후보들의 생각을 다 들여다보기엔 선거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 짧아서 누가 제대로 된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지 검증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과거처럼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면서 “기업들은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정책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뭔가 번뜩이는 정책을 꺼내는 것보다 10∼20년 후를 예측할 수 있는 정책이 더 좋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새 정부 신드롬’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들은 매일 이곳저곳을 다니며 4차 산업혁명을 외친다. 하지만 거기엔 성장만 있을 뿐 분배나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은 사회의 근간을 완전히 뒤바꿀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게 되면 인건비가 줄면서 생산비용은 획기적으로 절감될 것이다. 소수계층은 지금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리겠지만, 대다수는 훨씬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엘론 머스크는 “로봇이 못하는 일은 점점 없어질 것”이라며 “결국에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로봇세를 거둬 로봇 때문에 실직한 인간의 재교육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 로봇세에 대한 의견은 찬반이 나뉘어 다양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4차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이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이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아 아쉽다. 인간의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로봇세’나 ‘기본소득’처럼 로봇이 창출한 부를 인간에게 재분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선 후보들에게서 별다른 말을 들을 수 없다. 3D프린터를 ‘쓰리디’ 혹은 ‘삼디’로 읽는지는 논쟁거리가 아니다. 서로 자신이 맞다고 하지만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기업에 필요한 정책을 내놓겠다는 건 미덥지 않아 보인다. 고작 말꼬리 잡기로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것도 반갑지 않다. 미래에 대한 비전마저 네거티브로 일관한다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울 것 같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다르다. AI, 3D프린터, 로봇 등을 각 산업에서 어떻게 도입하고, 이윤을 창출할지는 기업의 몫이다. 산업을 어떻게 키울지는 기업과 민간에 맡기고 정치권은 4차 산업혁명 이후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세상만사-김준엽] 4차 산업혁명 이후를 말하라
입력 2017-04-13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