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어린이책 동네에 그림책 붐이 일기 시작한 데 크게 기여한 책 중 하나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였다. 두더지가 제 머리에 똥 싼 범인을 찾으려고 머리에 그 똥을 얹은 채 동물들을 찾아다니며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지?’라고 묻는다. 동물들은 ‘나 아냐, 내 똥은 이렇게 생겼어.’ 하며 뿌지직, 찍, 쿠당탕, 오동당, 온갖 똥을 싸 보인다. 당시 여섯 살이던 조카는 숨이 넘어가게 웃어대며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염소가 똥을 열다섯 개 쌌다는 대목에서는 늘 그 똥을 짚어가며 하나에서 열다섯까지 세고 난 뒤에야 책장을 넘겼다. 어린이책이란 모름지기 교훈이 있고 고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깨준 책이었다. 내게는 거의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 같았다고나 할까.
그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가 올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추모상(줄여서 알마상)을 받았다. 동화의 어머니라고 이름 붙여도 될 만한 린드그렌의 나라 스웨덴에서, 그녀가 타계한 직후 제정했다. 글 작가, 그림 작가, 스토리텔러, 독서단체 네 영역에서 단수나 복수의 수상자가 선정된다. 우리 돈으로 7억원 가까운 상금에 스웨덴 공주가 앞장서서 일주일 가까이 축제처럼 벌이는 시상식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어린이문학상’으로 일컬어진다.
에를브루흐의 작품 세계는 아주 넓다. 괴테를 비롯한 다양한 작가의 글에 그림을 그린다. 본인이 직접 쓰고 그린 책도 많다. 신과 대면해서 우리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물음에서부터 개가 무서운 아이의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깊고도 섬세하게 그려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가 함께 있을게’는 죽음을 전면적으로 끌어안는 이야기다. 늙은 오리가 자기를 데리러 온 죽음과 함께 연못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추워하는 죽음을 날개로 덮어 감싸주는 대목은 몇 번을 다시 봐도 가슴이 먹먹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런 깊고 따뜻한 성찰을 이렇게 짧은 지면에 담아낼 수 있다니. 이런 멋진 작가에 대한 조명이 너무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노벨상에 대한 관심의 십 분의 일만이라도 알마상에 나눠줬으면 좋겠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알마상을 아시나요
입력 2017-04-13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