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로 여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미국 배우 에단 호크(47·사진). 이 책은 그가 쓴 우화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손이 간다. 거기다 탁월한 문학적 기량이라니. 책장을 넘겨가면서 점점 이야기의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이미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이토록 뜨거운 순간’(1996) ‘웬즈데이’(2002) 등 두 권의 소설을 낸 바 있다. 또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미드나잇’의 시나리오 집필에도 참여해 두 차례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르는 등 작가적 입지를 굳혀 왔다.
그의 세 번째 책인 ‘기사의 편지’는 세상의 모든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아내와 나눈 대화에서 책은 출발했다. 2015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인생의 규칙을 나눠줄 수 있을까하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직설적인 얘기는 잔소리 혹은 따분한 설교로 비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상상의 조상인 어느 중세 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 우화집을 구상한 것이다. 때는 1483년 겨울. 영국 콘월 지방의 기사 토머스 레뮤얼 호크 경은 험난한 전투를 앞두고 있다. 자신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한 그는 출전하기 전날 밤, 사랑하는 네 자녀에게 자신이 익혀온 삶의 교훈을 담은 편지를 쓴다.
토머스는 천방지축 소년이었던 자신이 덕망 높은 기사인 외할아버지 밑에서 기사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겸손 협력 사랑 믿음 우정 용기 등 20가지 기사의 규칙을 이야기 한다. 기사의 규칙은 곧 인생을 사는 지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용서’를 보자.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너 자신에게서 가장 좋은 면을 보아라.’
토마스는 자신의 실수나 부족한 면도 숨기지 않는다. 아내와 길을 걷다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어린 귀족을 마주쳤던 일화를 들려주는 것이 그런 예다. 그 귀족의 언동을 잊지 못해 계속 언짢은 말을 내뱉는 토머스에게 아내가 마침내 일갈한다. “나는 그 아이를 몇 시간 전에 내려놓고 왔는데 당신은 여전히 안고 있군요.”
삶의 지혜를 전하는 과정에 버무려진 사건과 에피소드는 독자들에게 공감의 농도를 높인다. 우화집 속 에피소드는 작가 호크의 개인적 체험에서 길어온 것도 있지만, 아프리카 원주민 우화, 중국 고사, 아시아의 설화 등에서 널리 끌어오기도 했다.
이 우화집에서 호크는 중세 기사들의 피나는 수련 과정, 치열한 전투, 시끌벅적한 결혼식 장면 등을 적절히 섞어가며 인생에 꼭 필요한 가르침을 이끌어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점점 마음이 따스해져온다. 이는 자녀가 좀 더 반듯하게, 나은 세상을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깔려 있어서일 것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훈남 배우 에단 호크가 쓴 우화집
입력 2017-04-14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