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세상 돈줄을 틀어쥔 거인들의 실체

입력 2017-04-14 05:01
세계 금융계 거물들을 일컫는 ‘슈퍼허브’들은 환율 국제유가 금값 주가 국가신용도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세상의 돈을 끌어모으는 시장의 실력자들이다. 그들의 의사결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픽사베이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세계 금융시장의 조종간을 잡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책이라면 이미 서점에 차고 넘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슈퍼허브’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간다. 세상의 돈줄을 틀어쥔 금융계 거물들의 플랫폼에 잠입해 이들의 사생활 성격 대인관계 등을 살피면서 세계 금융의 지형도를 그린다. 시장의 거인들이 지금의 성공을 일궈내기까지 구사한 전략을 분석하고,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행태를 전한다. 제목 ‘슈퍼허브(SUPERHUB)’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세상의 돈 정보 인재가 연결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베일에 가려진 금융계 거물들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낼 수 있었던 건 여성 저자 산드라 나비디가 이들과 오랫동안 교류한 인물이어서다. 그는 수차례 다보스포럼 기조연설을 맡았을 만큼 명성이 대단한 금융 컨설턴트. 나비디는 4년간 진행한 인터뷰 내용과 수집한 자료들을 그러모아 책을 엮었다.

첫머리에서 다루는 건 다보스포럼이다. 스위스 알프스 산골짜기의 작은 스키 리조트에서 열리는 이 포럼엔 국가수반들을 비롯해 다국적기업의 CEO,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참석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 모든 일정을 뒤로 하고 다보스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인맥을 쌓기 위해서다.

‘(다보스에서는) 일대일로 만나서 강력한 인맥을 구축할 수 있는 끝없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다보스를 설명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3일만 참석하면 3개월의 출장을 줄일 수 있다.’ 이것은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시간을 더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보스가 안기는 핵심적인 혜택이다.’

뒤미처 슈퍼허브가 되려면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예가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다. 과거 미국 재무부 관료들은 그를 ‘돈 많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 정도로 평가했다. 하지만 소로스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려는 강력한 욕구’가 있었다. 언론을 적극 이용해 지명도를 끌어올렸고 자선사업을 시작했다. 국제투명성기구 설립에도 일조했다. 소로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방대한 인맥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서 금융 엘리트 왕국에 입성하게 된다.

소로스 외에도 래리 핑크(세계 최대 자산관리사인 블랙록 창립자), 제이미 다이먼(미국 최대은행 JP모건 CEO), 스티븐 슈워츠먼(사모펀드 회사 블랙스톤 창업자) 등 슈퍼허브들의 성공 스토리가 다뤄진다. 이들이 오찬 개인파티 자선사업을 활용해 어떻게 인맥의 거미줄을 직조해나갔는지 전한다.

슈퍼허브들의 엇비슷한 성공 스토리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다가 끝나는 책은 아니다. 어느 순간 핸들을 틀어 금융계 성차별 문제를 지적하고, 세계 경제의 불평등 실태를 꼬집기도 한다.

저자는 서두에 ‘이 책은 은행 때리기를 위해 쓰인 책은 아니다’고 적었다. 하지만 슈퍼허브에 집중된 부와 권력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면서, 금융계 질서를 재편해야한다는 내용이 비중 있게 실려 있다. 상층부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압박을 주문하는 주장이 책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인 행동과 그에 따른 인과적 피드백 고리로 체제를 이끄는 교점들이므로 적극적으로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 네트워크의 독점적 구조를 바꿔서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더욱 다양하고, 평등하며, 지속 가능한 체제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