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P-플랜 공포… 손실 줄잡아 4조+α
입력 2017-04-13 00:00
대우조선해양이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프리패키지드플랜)’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과 산업은행이 채무재조정안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면서다. 산은은 회사채 투자자를 제외한 시중은행 등은 자율적 채무재조정안에 사실상 합의했다며 국민연금을 다시 압박했다. P-플랜은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다. 돌입 시 발생할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산은은 P-플랜에 들어가면 고강도 채무조정으로 금융권 손실액이 4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자율조정 합의 시 손실액(3조1000억원)보다 많다. 이 또한 예상치일 뿐이다. 해외 선주들의 계약 취소 등에 따른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다.
P-플랜은 법원의 강제력 있는 채무조정과 워크아웃의 신속한 자금 지원 기능을 결합한 제도다. 금융 당국은 P-플랜 돌입 시 가장 우려되는 상황으로 신규 수주 중단을 꼽는다. P-플랜은 기간이 3개월 이내로 단축돼 일반 법정관리보다 빠르다. 회생을 전제로 자금도 지원된다. 하지만 사실상 법정관리 중인 기업과 계약을 맺을 선주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12일 “5000억원 정도 계약이라도 따내야 유동성에 숨통이 트인다”며 “3개월도 대우조선에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잇단 계약 취소 가능성도 걱정거리다. 선주는 배를 주문할 때 조선사에 선수금을 준다. 계약 취소를 대비해 은행과 선수금환급보증(RG) 계약도 맺는다. 계약이 취소되면 선금을 은행에서 받는다. 이처럼 선주들이 계약 파기에 따라 은행에 선수금을 달라고 요청하는 게 ‘RG콜’이다. 대규모 RG콜은 은행권에 충격을 준다.
일단 산은은 P-플랜에 들어가도 대우조선이 건조 중인 선박 114척 가운데 8척 정도만 발주 취소될 것으로 본다. 선주들과 접촉해 의견을 받은 결과다. 이 경우 RG콜 규모는 7000억∼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실제 선주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확신하기 어렵다.
P-플랜에 들어가면 대우조선이 청산 절차를 밟는 건 아니다. 채무조정과 함께 산은 등이 신규 자금을 지원한다. 한진해운의 경우 배 압류 등으로 영업활동이 불가능해 청산됐다. 반면 대우조선은 고정자산 매각 등을 통해 영업이 가능하다. 자율적 채무재조정 시 예상 지원액은 2조9000억원이지만 P-플랜 시 지원액은 3조3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대우조선 회사채 30%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금융 당국과 산은이 ‘P-플랜 공포’를 조성한다고 불만을 나타낸다. 이날 입장자료에서 “산은은 지난달 23일 갑작스럽게 자금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일방 발표했다. 충분치 않은 시간 내에 결정을 요구하고 있어서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우조선의 적자가 지속될 우려가 높아 6년 후 회사채를 상환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은은 “17∼18일 사채권자 집회 때 회사채 투자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합의가 불발되면 오는 20∼21일 법원에 P-플랜 개시를 신청할 계획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