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를 ‘삼디’로 읽으면 어떻고 5G를 ‘오지’로 읽으면 또 어떤가. 3D(3차원) 프린터가 산업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5G(5세대 이동통신)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도 대선 후보 진영 간에 본질이 아닌 곁가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7561달러를 기록해 11년째 선진국 진입을 위한 3만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에는 역대 최다인 25만명이 몰렸다. 새로운 미래에 도전해야 할 청년들이 최악의 취업난 속에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초고속 고령화의 현실은 또 어떤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26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상대로 선거 초반부터 네거티브 공방이 뜨겁다. 국가경제의 미래를 고민하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더 나은 정책을 위해 경쟁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각 당에 전달한 ‘제19대 대선 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이 눈길을 끈다. 경제계가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변하겠다면서 정치권에도 한국 경제가 나아갈 미래의 해법을 제시하는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이런 정책을 마련해 보시지요’라고 능동적으로 제안하고 피드백을 받아 경제계가 새로운 성장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제안은 신선하다. 과거처럼 ‘이러이러한 걸 베풀어 주세요’라는 수혜성 건의에서 벗어나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정치권과의 협업을 통해 선진국 진입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는 높은 불신의 벽에 갇혀 있다. 정부는 기업을 믿지 못해 일일이 규제하려 들고 노조는 사측을 신뢰하지 않으며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는 여전하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과 노조의 이기주의도 문제지만 ‘재벌’로 상징되는 재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일부 대기업 총수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졌다. 순환출자, 분식회계, 편법상속, 일감 몰아주기 등 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불공정 사회를 부추기고 그 결과 반기업 정서가 심화돼 선량한 다수 기업들이 과도한 규제를 받게 되는 ‘불신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스스로 경영진 감시와 견제장치 마련 등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물론 정부의 규제나 상법 개정 등 입법조치는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기업들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룰을 만들어주고,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되 이를 어기면 가차없이 퇴출시킨다.
기업이 법보다 높은 수준의 선진 규범을 솔선해 실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국민들은 기업인을 존경하고 그 기업에 선진국 수준의 경영권 승계,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 장치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고용의 이중구조 해소, 저출산·고령화 해법,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과 법·제도 정비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도 긴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정치권이 적극 소통하고 건전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원활한 팀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그것이 불신의 악순환을 끊고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을 쌓는 길이다.
김재중 산업부장 jj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재중] 불신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입력 2017-04-12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