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떠도는 돈 사상 최대

입력 2017-04-12 00:00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시중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부동(浮動)자금이 급격하게 늘면서 실물경제 침체와 금융 불안을 부추긴다는 우려감도 높다.

현금과 같이 곧바로 찾아 쓰는 돈을 뜻하는 광의통화(M2) 가운데 부동자금 성격의 수시입출식 예금 및 2년 미만 정기예·적금 잔액이 2월 중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4월 위기설’ 같은 불필요한 불안감을 차단하고, 새 정부의 확실한 경제 로드맵 제시가 있어야 장기투자 심리를 되살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2월 중 통화 및 유동성 현황을 보면 M2는 2420조원을 기록해 1월보다 8조원가량 늘었다. 증가율은 전월 대비 0.3% 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 5.9% 포인트에 달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 자체는 지난해 내내 월별로 6% 포인트 이상을 기록하다 5% 포인트대로 낮아졌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 부동자금 성격의 지표는 모두 전월 대비 증가세로 돌아섰다.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양도성예금증서(CD) 및 환매조건부채권(RP)을 포함한 시장형 상품 등이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수시입출식 예금과 2년 미만 정기예·적금은 각각 483조원, 943조원을 기록했다. 둘 다 역대 최대치 잔액이다.

반면 같은 M2 가운데 그나마 투자 성격의 돈으로 볼 수 있는 수익증권 항목은 전월 대비 감소세로 돌아섰다. 주식시장에서 차익을 보려고 팔거나 채권이 약세를 보여 되팔았던 여파로 분석된다.

광의통화 가운데 단기성 부동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경제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해 장기투자 대신 현금성 금융자산 보유를 늘리는 것이다. 경제학에선 ‘예비적 동기’라고 부른다.

이게 늘어나면 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장기자금 공급능력이 약화돼 실물경기 침체의 장기화를 불러온다. 저금리 상태에서 단기성 부동자금이 늘면 부동산 거품이 촉발돼 실물경제 불안을 가져온다. 돈이 금융상품 및 기관 사이를 휙휙 옮겨 다니는 일이 잦아져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금융기관 리스크도 커진다.

산업은행 신정근 연구위원은 최근 시중 부동자금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중 유동자금 비중이 2016년 말 63%로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며 “경제주체들이 경제 및 금융시장 불확실성 증대로 장기자산 투자보다 단기자산 위주로 운용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동성 공급을 줄이기는 어렵다. 위축된 경기를 고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4월 위기설 같은 불안감이 확산되며 주식과 채권에서 빠진 돈이 갈 곳을 못 찾고 부동자금 형태로 떠다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 원장은 “다음 달 출범할 새 정부가 우선 정확한 경제 로드맵을 제시해 불확실성부터 해소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