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 단임 약속하지 말았어야”

입력 2017-04-11 17:42
외교부 직원들이 11일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에서 작성 30년이 지나 비밀 해제된 외교문서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외교부는 총 1474권, 23만여쪽의 외교문서를 이날 공개했다. 뉴시스
7년 단임제인 5공화국 정권을 수립한 전두환(사진) 전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이 공개됐다. 아웅산 폭탄 테러를 저지른 공작원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버마(현 미얀마) 판사의 딸이 일본에서 의문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외교부는 작성 후 30년을 맞은 외교문서의 비밀을 해제하고 11일 일반에 공개했다. 총 1474권 23만여쪽으로 1986년도에 생산된 문서가 주를 이룬다.

全 “직선제 약속은 실수”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 당시 국무부 장관이던 조지 슐츠는 86년 5월 7∼8일 한국을 방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슐츠 장관과의 면담에서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정치인으로서 경험이 없어 실수한 것이 하나 있다. 현 헌법(5공화국 헌법)이 규정한 단임 약속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슐츠 장관이 정권 이양과 직선제 개헌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같이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정치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나에게 충고한 말”이라면서 “마음속으로 헌법을 준수할 생각만 하고 공언을 안 했더라면 지금쯤 야당은 나에게 헌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88년에 (대통령을) 그만둔다니까 통치권 누수 현상이 있는지 이것을 이용해 재야세력이 학생과 연합해 당장 직선제 개헌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정국”이라고도 했다. 슐츠 장관은 이에 “누수 현상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또 간선제를 채택한 미국 선거방식을 언급하는 등 전 전 대통령의 비위에 맞춰추는 듯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핵 포기 후회 발언

전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핵개발을 백지화한 뒤 이를 아쉬워하는 발언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86년 10월 15일 에드워드 라우니 미 대통령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아 깊은 지식이 없다”면서도 “우리 한국에도 핵무기 3개가 있으면 북한이 남북 대화에 응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의 언급은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구상(SDI)’이 미국과 구소련 간 협상을 추동했다는 취지의 발언 후에 나왔다. SDI는 지금도 논란이 많은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원형이다. 당시 구소련을 크게 자극해 미·소 양국 간 군축협상이 열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버마 판사 딸, 일본에서 의문사

아웅산 테러를 저지른 북한 공작원 재판에 참여한 버마 판사의 딸이 일본에서 의문사한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이 사건에 북한이 관여한 정황도 포착됐지만 결국 범인을 찾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됐다. 86년 12월 이상옥 당시 주제네바 대사는 제네바 주재 미얀마대사와 만나 식사를 하며 대화한 내용을 외교전문을 통해 본부에 보고했다. 전문에 따르면 미얀마대사는 “아웅산 테러사건 재판에 관여했던 판사 딸이 약 1년 반 전 일본 유학 중 변사하는 사건이 있었다”면서 “현장에서 북한제 담배꽁초가 발견됐고 자살할 특별한 동기도 없어 사인 규명에 노력했으나 진상을 밝히지 못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주제네바 미얀마 대표부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전화를 걸어와 한때 소동이 빚어졌으나 경찰 수색 결과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83년 10월 아웅산 테러 직후 버마 당국은 북한 공작원 김진수와 강민철을 체포했으며 그해 12월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김진수는 직후 처형됐으나 강민철은 범행을 자백한 점이 참작돼 형 집행이 유예됐고 25년간 감옥살이를 하다 2008년 5월 간질환으로 숨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