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발레를 배우던 5살 소녀는 피겨스케이팅을 하던 친언니를 따라 빙판 위에 섰다. 또래 아이들보다 힘과 탄력이 돋보이는 점프를 했다. 피겨에 재미를 느끼고는 누구보다 성실히 훈련에 임했다. 코치들이 가르쳐주는 기술들을 배우는 족족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일본 열도는 ‘피겨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에서는 ‘피겨여왕’으로 거듭난 동갑내기 김연아(27)에게 밀려 세계 정상에 서겠다는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비운의 피겨스타’ 아사다 마오는 그렇게 빙판을 떠났다.
아사다는 10일 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갑작스럽지만, 나 아사다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끝내기로 결단했다. 많은 분의 지지와 응원 덕분에 지금까지 오랫동안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아사다는 최근까지 2018 평창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운동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일본피겨선수권대회에서 24명 중 12위에 그치는 등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고 피겨와의 작별을 고했다.
아사다는 12살 때 여자선수들이 하기 힘들다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하며 스타탄생을 알렸다. 2004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2005년 세계주니어선수권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우승 행진을 이어갔다. 언젠가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꿈도 함께 무르익었다.
하지만 주니어 시절 김연아와 라이벌 구도를 그렸던 아사다는 시니어 무대에서 ‘만년 2인자’가 됐다. 김연아가 여자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대를 돌파하며 우승한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아사다는 4위를 했다. 김연아는 이듬해 밴쿠버올림픽에서 당시 여자싱글 사상 최고점인 228.56점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반면 아사다는 장기인 트리플 악셀을 세 번 뛰고, 개인 신기록인 205.50점을 써내고도 김연아에게 밀려 눈물을 삼켰다.
김연아는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은퇴 무대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아사다는 이 대회에서도 6위에 머물렀다. 아사다는 잠시 휴식을 취하다 2015년 복귀해 정상에 서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올 시즌 두 차례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6위와 9위를 하며 부진의 늪을 탈출하지 못했다. 김연아라는 벽을 넘지 못한 일본 천재는 결국 스케이트화를 벗었다. 일부에서는 아사다가 주변의 뛰어난 인물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는 살리에리 증후군에 시달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아사다는 은퇴를 선언하며 “피겨 인생에 후회는 없다. 앞으로 새로운 꿈과 목표를 찾고, 웃는 얼굴을 잊지 않고 전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일본의 또 다른 피겨스타 안도 미키는 “그동안 감동적인 스케이팅을 보여줘 고맙다. 동시대에 당신과 경쟁해 영광이었고, 일본 국가대표팀으로 함께 연기를 펼쳐 행복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퀸 연아’에 가려… 빙판 떠나는 ‘비운의 2인자’
입력 2017-04-11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