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청풍호, 옥순봉 앞 바위 새, 호수 위 붉은 입술

입력 2017-04-13 00:02
충북 제천 가은산 전망데크에서 내려다본 청풍호. 호수 왼쪽 위 옥순봉과 건너편 산 위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새바위, 오른쪽 옥순대교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을 펼쳐내고 있다. 호수 위를 오가는 유람선을 타면 기암괴석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해질녘 야간 경관조명이 더 해진 청풍대교
망월산성에서 내려다 본 청풍문화재단지
초록빛 새순을 머금은 산과 웅장한 근육질의 바위가 고요한 호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유람선이 물결을 일으키면 은빛 출렁거림이 적막을 깬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숨고 산 능선이 붉게 타오르면 하늘은 쪽빛에서 주황빛으로 핏빛을 토해내기 시작하고, 호수도 그 빛을 받아 함께 물들어간다. 산세와 호반이 빚어내는 풍경에 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마음은 충만해진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북 제천이다.

장쾌한 풍광에 훨훨 날갯짓을 한다, 가은산

‘가슴이 벅차도록 장쾌하다.’ 제천시 수산면의 가은산(加隱山)에 올라 보는 풍광은 이런 비유로도 모자랄 정도다. 높이 575m에 불과한 데다 1016m로 100대 명산에 속하는 금수산(錦繡山)에 가려 유명세는 덜 하지만 높아야만 빼어난 전망을 품는다는 생각을 무색하게 만든다.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 오른 것과 같다는 옥순봉(玉筍峰)이 우뚝하고 그 옆 청풍호를 따라 남한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주황색·녹색의 옥순대교와 새 모양의 바위가 더해지면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풍경을 완성한다.

가은산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 또는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는산에는 현실성은 좀 떨어지지만 흥미로운 얘기가 전해진다. 먼 옛날 마고할미가 이 산에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아냈다. 할미는 “이 산에 골짜기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한양이 들어설 골짜기인데, 내가 이곳에 눌러 앉아 살려고 해도 한양이 될 땅이 못 되니 떠나가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한다. 1969년에 편찬된 ‘제천군지’에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수록된 가혜성을 이곳으로 비정(比定·추정)하기도 했다. 실제 가은산 성 터에서는 삼국 시대 토기 조각이 발견됐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가은산은 자연사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새바위, 벼락바위, 투구바위, 곰바위, 기와집바위, 손바닥바위, 석문, 굴바위, 마당바위, 코끼리바위, 물개바위, 촛대바위, 처마바위, 시계바위, 거북바위, 학바위, 전차바위 등 화강암의 자연 풍화로 형성된 기암괴석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옥순봉 쉼터를 들머리로 잡았다. 2001년 개통된 옥순대교는 길이 450m로 주홍색 커다란 아치가 특징이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괴곡나루를 대신해 건설됐다. 다리 북쪽 옥순봉 쉼터가 있다. 넓은 주차장과 매점·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언덕을 오르내리다 왼쪽과 오른쪽에 산을 두고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평탄한 숲을 따라 긴 시간 한적한 계곡을 지나면 새바위 갈림길에 다다른다. 새바위봉은 새 바위 형상의 바위와 옥순봉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 구간이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길을 폐쇄해 갈 수 없다. 이어 둥지고개. 이 곳에서 둥지봉(430m)으로 가는 길도 막혀 있다. 봉우리 북쪽 중턱에 석축 보루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곧추서 있다. 다소 가파르게 치고 오르지만 퍼즐의 조각그림처럼 순간순간 트이는 전망이 힘든 여정을 어루만져 준다. 정상을 갔다가 되돌아와 주능선을 따라가면 전망데크가 반긴다. 이곳에 서면 빼어난 경관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옥순봉, 청풍호, 새바위, 옥순대교 등이 파노라마처럼 풀어놓는 풍광은 황홀경이다. 붉은 입술을 닮은 옥순대교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 옆에 강 건너 옥순봉이 매끈한 바위들을 토해낸다. 등산로 폐쇄로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옥순대교를 바라보는 새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어느 하나 과한 것 없이 조화로운 풍경을 펼쳐놓는다. 그 너머로 월악산 봉우리들이 서로 어깨를 견주며 아스라이 이어진다.

뒤로는 망덕봉과 완만한 능선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금수산 비단결 같은 정상이 뾰족하다. 금수산에 부딪힌 햇살이 청풍호 수면 위로 흩어진다. 훨훨 날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등산로를 따라 커다란 바위들이 붉으락푸르락 제멋대로 표정을 지으며 이어진다. 상천마을에 내려서면 산수유마을이 화려한 봄꽃을 자랑한다. 금수산 들머리로 수려한 계곡미를 자랑하는 용담폭포가 지척이다.

청풍호 따라 도는 굽잇길

제천여행에서 구절양장 휘돌아가는 청풍호 드라이브를 빼놓을 수 없다.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는 드넓다. 둘레를 도는 82번 국도는 쉬지 않고 달려도 1시간이 걸릴 정도다. 드라이브 명소답게 가는 곳곳이 그림이다. 금월봉,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랜드가 자리하고 활짝 핀 벚꽃이 화려하게 수놓은 굽이굽이 장관길이다. 이 길에서 ‘청풍호벚꽃축제’가 16일까지 열리고 있다. 지난 9일 이벤트와 공연 등 본 행사는 끝났지만 꽃은 이번 주말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금성면에서 가다보면 먼저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빼닮아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금월봉이 도로변에 솟아 있다. 옹기종기 각양각색의 기암들은 밤에 보면 더욱 환상적이다. 이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익스트림 레저스포츠 단지인 청풍랜드. 청풍호와 청풍대교, 청풍문화재단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인공암벽, 번지점프, 케이블코스터 등 온갖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 앞 청풍호에는 높이 160여m의 물줄기를 쏟아내는 수경분수가 시선을 빼앗는다.

청풍대교는 해넘이와 함께 야경이 멋진 곳이다. 유람선을 타지 않더라도 다리 위를 거닐다 보면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다리를 건너면 청풍문화재단지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을 비롯한 5개 면과 61개 마을의 문화재들을 수몰되기 전 옮겨와 모아놓은 곳이다. 보물인 한벽루 등 53점의 문화재와 유물전시관, 수목역사관 등이 있어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옛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유물들은 영화촬영세트장처럼 전시용이 아니다.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어 정감이 흐른다. 망월산성을 지나 망월루에 오르면 청풍랜드를 비롯한 청풍호반이 한눈에 펼쳐진다. 문화재 외에 독특한 나무를 보는 은근한 즐거움도 있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連理枝)부터 하늘을 떠받친 손 모양의 소나무, 하트를 품은 소나무, S라인 벚나무 등이 이채롭다.

여행메모

기암절벽 가까이 보기엔 유람선이 제격… 청풍호 주변 민물매운탕 등 먹거리 다양


충북 제천의 옥순대교는 중앙고속도로 남제천나들목에서 약 25㎞ 떨어져 있다. 남제천나들목을 나서면 금성면사무소를 지나 청풍호 드라이브길이 시작된다. 청풍대교 직전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우측으로 호수를 끼고 구불구불 커브가 심한 길이 이어진다. 옥순대교 바로 옆에 옥순봉 쉼터가 있다. 넓은 무료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청풍호 기암절벽을 가까이서 보기에는 유람선이 제격이다. 청풍나루에서 단양 장회나루까지 왕복 1시간 20분 운행하는 유람선 이용료는 1만5000원이다. 운행 시간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제천의 먹을거리로는 매운탕, 곤드레나물밥이 유명하다. 청풍호를 끼는 도로 곳곳에는 매운탕 식당들이 눈에 띈다.

청풍랜드 인근 교리가든(043-648-0077)은 쏘가리와 메기 등 잡고기를 이용한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하다. 칼칼한 양념에 부드러운 생선살이 어우러져 비리지 않고 깊은 맛을 낸다. 약초와 산채를 활용한 건강 음식점들도 곳곳에 있다. 바우본가(043-652-9931), 예촌(043-647-3707) 등이 맛깔스럽게 음식을 낸다고 소문났다. 또 청풍면에는 한우집들이 많다. 임가네한우(043-645-0090)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 꽃피는 산골(043-651-4351)은 된장찌개와 함께 내는 보리밥이 맛있다.

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