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차은영] 포퓰리즘 물든 경제공약

입력 2017-04-11 17:36

‘어떤 정부도 무정부보다는 낫다’는 말이 실감되는 요즘이다. 시위가 시작된 이후부터 대선을 한 달여 남겨놓은 지금의 시점까지 가히 포퓰리즘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는 경제 규모의 국가가 이 정도로 자정능력을 상실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포퓰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 사람들의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거나 이에 호소하는 정치적 철학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대중의 인기를 이용해 선심성 정책을 표방해 정략적인 행동을 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자기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 발전의 장기적인 비전이나 목표와 상관없이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명분으로 국민을 속이고 선동해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경향을 말한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 공약을 보면 디테일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포퓰리즘으로 뒤덮여 있다. 심지어 메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고 정책의 유효성은 더욱 의문시되는 낡은 공약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새 대통령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저성장 기조에 대한 대처와 장기적 비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각국에서 인구절벽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기술과 신산업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려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신성장동력과 산업에 대한 담론조차 변변히 없다. 미래 지향적 공약으로 4차 산업혁명을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그 해법으로 정부부처를 신설하겠다는 결론은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전혀 이해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유시장경제제도를 포기할 심산이 아니라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규칙과 제도를 업데이트시켜야 하는데 반시장적, 반기업적 규제 일변도 공약들로 가득하다. 시험 점수가 100점인 학생과 0점인 학생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100점 학생의 답안지를 뺏어버린다고 0점인 학생의 점수가 변하지 않는다. 공부를 더 해서 그 내용의 이해도가 높아지면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대기업을 옥죄고 부자들을 후려친다고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저소득계층의 자생력이 증가되는 것은 아니다.

한 국가의 리더는 고통을 조금씩 분담해 다같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자고 설득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쏟아내는 경제 공약들은 죄다 나눠먹자는 식의 논리뿐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이나 인위적인 중소기업 임금 인상은 우리 경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고 민간 부문을 구축시키는 정책이다. 부실기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부으면서도 구조조정은 불가하다든지, 연금 개혁에 역행하는 소득대체율 증가와 부채 탕감 공약은 재원 조달이 의문시되는 포퓰리즘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는 시장과 기업이 만들고 임금은 생산성에 의해 결정될 사항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회성 정책보다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통해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모니터링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2% 성장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없는 좀비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새 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유연성이 보장돼야 한다. 일자리와 소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시장에서 가계부채와 고용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선택하고 후회하는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섣부른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선심성 복지 공약이나 국민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국가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공약은 과감히 패스해야 한다.

차은영(이화여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