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딸내미는 어디 갔나. 훌쩍 크더니 쌀쌀맞기 그지없다. 사춘기가 오고 부녀간 대화는 사라진지 오래. “공부 좀 하라”는 아빠의 잔소리에 딸은 대답도 없이 헤드폰으로 귀를 막아버린다.
“아빠도 내 인생을 살아보면 그렇게 말 못할 걸?” “네가 아빠 인생을 딱 하루만 살아보면 알 텐데….”
12일 개봉한 영화 ‘아빠는 딸’은 이렇게 시작된다. 입만 열면 다투기 바빴던 아빠(윤제문)와 딸(정소민)의 몸이 뒤바뀌면서 좌충우돌 사건들이 벌어진다. 아빠의 몸으로 출근한 딸은 회사에서 외롭고 초라한 아빠의 처지에 놀라고, 딸의 몸으로 등교한 아빠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여러 작품에서 변주돼 온 ‘바디 체인지’ 코믹물이 그리 새롭진 않지만 ‘아빠는 딸’에 담긴 메시지는 그리 뻔하지만은 않다. 단절됐던 부녀가 자연스럽게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을 통해 세대 간 소통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배우 윤제문(47)이 이 작품을 택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제문은 “딸 가진 아버지로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배우로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걸 표현한다는 데 대한 욕심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대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두 딸을 둔 아빠 윤제문은 극 중 딸과의 관계가 실제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릴 때는 딸들이랑 많이 놀아줬었는데 중3 때쯤부터 엄마랑 가까워지더라고요. 신체 변화도 생기고 하니 더 그랬겠죠. 확실히 아빠랑은 대화가 없어졌어요.”
‘아빠는 딸’은 딸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10대 소녀를 연기하기에 앞서 윤제문은 집에서 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부터 관찰해나갔다. “딸들이 되게 편하게 지내는 구나 싶었죠. 밖에선 조신한 척 할 텐데…. 방청소를 안 하더라고요. 방문을 열면, 어우. 여자들이 더 지저분한 거 같아요(웃음).”
악역 혹은 센 캐릭터 전문인 그에게 코믹 연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무려 걸그룹 댄스까지 선보였다. 그는 “코믹한 부분이 많은 영화라서 초반에는 걱정이 많이 됐다”면서 “재미있으면서도 오버스럽지 않게 표현하기가 힘들더라. 감독님께서 전체적으로 조율을 잘 해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윤제문의 영화계 복귀 신호탄이다. 지난해 5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그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 사이 개봉된 출연작 ‘덕혜옹주’ ‘아수라’ 홍보에는 나서지도 못했다. 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제가 실수했던 부분에 대해선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다. 특히 작품을 함께한 배우·스태프·제작사에 누를 끼쳐 미안하다”고 전했다.
앞서 윤제문은 지난해 12월 연극 ‘청춘예찬’ 무대에 섰다. 자숙 중이던 그에게 박근형 연출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출연 제안을 했다. “제문아, ‘청춘예찬’ 하자. 초심으로 돌아가자.” 1999년 그가 배우로서 처음 얼굴을 알렸던 작품이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20년 가까이 배우로 살아온 윤제문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역시 딸들이다. “한번은 제 영화를 본 큰 애 친구가 ‘너희 아버지 악역이더라’고 얘기를 했나 봐요. 그때 우리 딸이 ‘우리 아버지 진짜 멋있지 않냐’고 대꾸했다는 거예요. 이것도 애들 엄마를 통해 들은 얘기인데…, 그렇게 응원을 해주니 고맙죠(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윤제문 “악역 전문 배우? 딸들은 아빠 멋있대요” [인터뷰]
입력 2017-04-1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