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컵에 침 뱉던 악동, 오거스타 별 되다

입력 2017-04-10 18:44 수정 2017-04-10 21:32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10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 81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연장 18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낸 뒤 포효하고 있다. AP뉴시스
사진 왼쪽부터 가르시아가 대회 우승을 확정한 뒤 약혼녀 엔젤라 앳킨스와 포옹하는 모습. 가르시아가 지난해 대회 우승자 대니 윌렛이 입혀주는 그린재킷을 입고 있다. 마스터스 우승 트로피를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가르시아. AP뉴시스
10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7435야드)에서 열린 제 81회 미국프로골프(PGA)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18번홀. 세르히오 가르시아(37)는 꿈에도 그리던 우승을 한 뒤 그린에 무릎을 꿇고 약 2초간 잔디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자웅을 겨룰 것으로 찬사를 받았던 ‘골프 신동’은 다혈질과 매너없는 플레이로 ‘악동’소리를 들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사랑을 통해 성숙해진 그는 마침내 21년간 그를 옥죈 메이저대회 무관의 징크스를 깨고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세 살 때 클럽 잡은 신동… 우즈 대항마 찬사

가르시아는 세 살 때 프로골퍼인 아버지 손에 이끌려 클럽을 잡았다. 13세 때에는 18홀을 이븐파로 마칠 수 있는 ‘스크래치 플레이어’가 됐고, 15세 때 유러피언투어 대회에 출전해 컷 통과했다. 16세 때인 1996년 브리티시오픈에 나가 메이저대회 데뷔전을 치렀고 이듬해 스페인 투어 카탈로니안오픈에서 사흘연속 64타를 치고 우승했다. 골프 신동의 출현에 유럽은 들썩였다.

가르시아는 19세 때인 1999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 이어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우즈의 뒤를 이을 차세대 황제가 가르시아가 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혈질과 갖가지 기행으로 점철된 ‘악동’

하지만 다혈질 성격은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죽이고 말았다. 2007년 월드골프챔피언십에선 경기 중 3퍼트를 한 후 기분 나쁘다며 홀 속에 침을 뱉고, 광고판을 걷어찼다. 2011년 타일랜드 골프챔피언십 때는 티샷이 맘에 안 들어 클럽을 호수에 던져버렸다. 이듬해 월드골프챔피언십 마지막 날 3번홀(파4)에선 티샷이 물에 빠지자 홧김에 계속 클럽을 휘둘러 8오버파(옥튜플보기)를 적어냈다.

2013년 유러피언 투어 시상식에서 가르시아는 “우즈를 집에 초대해 프라이드 치킨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프라이드 치킨은 흑인을 비하할 때 종종 쓰이는 말이다. ‘악동’을 넘어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까지 이어지며 골프 팬들은 그를 멀리했다.

타고난 재능으로 PGA투어에서 9승을 기록했지만 최고의 긴장도를 보이는 메이저대회에서는 어김없이 멘탈이 흔들렸다. 2007년 스코틀랜드 카누스티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 마지막날 18번홀에서 2.4m 거리의 퍼팅을 놓치며 결국 다 잡은 우승을 날렸다. 그렇게 73차례 메이저대회를 거쳤지만 단 한 번도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2010년에는 세계랭킹이 6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PGA 투어에서는 2012년 윈덤챔피언십 이후로 3년 넘게 우승하지 못했다. 신동은 평범한 프로로 전락했다.

흐르는 세월과 사랑에 순한 양 된 가르시아

다혈질의 가르시아가 성숙한 골퍼로 탈바꿈한 것은 세월의 흐름뿐 아니라 사랑의 힘이 컸다. 힘든 시기를 보낸 가르시아는 지난해 웨일스 출신의 미국 골프채널 리포터인 엔젤라 앳킨스를 만났고 그 뒤로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제 2의 골프인생을 시작했다.

이번 마스터스에서 가르시아는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와 4라운드 합계 9언더파 279타 동타를 기록, 연장전에 들어갔다. 18번홀(파4)에서 치른 연장 첫 홀에서 로즈가 보기를 한 뒤 가르시아는 약 3.5m거리의 버디퍼트를 성공하고 드디어 생애 처음 메이저대회 정상에 섰다. 1996년 브리티시오픈 출전 이후 21년 만이다.

우승 직후 가장 먼저 앳킨스와 포옹을 나누며 기쁨을 함께 했다. 가르시아와 앳킨스는 올해 말 결혼할 예정이다. 가르시아는 우승 후 “메이저대회 우승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메이저대회 마지막 날 이런 편안한 기분은 처음 느껴본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그동안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라고 불렸는데 앞으로 ‘메이저에서 1승만 한 선수 가운데 최고’라고 들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가르시아는 세베 바예스테로스(1980·1983년),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1994·1999년)에 이어 스페인 선수로 마스터스에서 그린재킷을 입은 세 번째 선수가 됐다. 특히 이날은 자신의 우상 바예스테로스의 생일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