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불편한 진실 숨은 ‘票퓰리즘 공약’ 가맹점 카드 수수료 인하

입력 2017-04-11 00:00 수정 2017-04-11 17:23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와 정당이 민생 살리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빠지지 않는 공약이 ‘가맹점 카드 수수료 인하’다.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인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나 높은 임대료 등 본질적인 부담 요인은 건드리지 않은 채 효과에 비해 생색만 내는 ‘선심성 공약’에만 매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중소 가맹점의 우대수수료를 현 1.3%에서 1.0%로 인하하는 공약을 냈다. 여기에 영세 가맹점 우대수수료 적용기준을 현행 연매출 2억원에서 3억원으로, 중소 가맹점 기준은 연매출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체크카드 수수료를 0%로 인하하는 공약과 함께 카드 수수료 1% 상한제를 제안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월 16일 소상공인업계 현장 간담회에서 연매출 3억∼5억원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고, 현행 3.5% 안팎인 온라인 가맹점 수수료도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카드 수수료 인하를 포함한 영세 자영업자 지원을 공약으로 냈다.

카드 수수료 인하 공약은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56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다. 2015년 말에는 카드 수수료 인하 결정을 놓고 새누리당(현 한국당)과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이 서로 자신의 성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여신금융업법 개정에 따라 연 매출 2억원 미만 영세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는 1.5%에서 0.8%로, 연 매출 2억∼3억원 이하 중소 가맹점은 2.0%에서 1.3%로 각각 0.7% 포인트 낮췄다.

카드업계는 바짝 긴장한 상태다. 지난해 수수료를 인하해 추가 인하는 부담이 크고 앞서 정해놓은 ‘적격비용(원가)’ 산정에 따라 수수료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금융 당국 등과 함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체계’ 도입방안을 마련한 뒤 3년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하기로 했다. 업계는 2015년에는 금리 인하 등에 따라 조달비용이 낮아진 점을 고려해 카드 수수료를 낮춘 것으로, 정치권의 인하 공약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결제시장 생태계도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결제시장은 ‘소비자-가맹점-카드사-밴(VAN)사’로 이어지는 체계다.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카드로 결제하면 가맹점은 카드사에 결제금액의 2∼3%의 수수료를 내고, 카드사는 VAN사에 건당 100∼170원의 수수료를 준다. ‘중간유통상’인 VAN사는 산하에 대리점을 두고 가맹점에 결제망을 설치하고 종이전표를 모은다. VAN사는 카드사로부터 받은 수수료 가운데 35∼36원을 대리점에 지불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카드 수수료 인하는 카드사뿐만 아니라 VAN사와 대리점에도 직격탄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추가 인하는 카드사에 역마진을 떠안으라는 것”이라며 “수수료를 인하해도 카드사는 버틸 수 있지만, VAN사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 수수료 인하에 대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서울 중랑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장모(45)씨는 “최근 소액결제도 늘었고, 각자 내기가 확산되며 각자 카드로 결제하는 일이 늘었다.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수수료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반면 서울 성북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4)씨는 “카드 수수료는 인건비나 임대료에 비하면 큰 부담은 아니다. 아예 안 낸다면 좋겠지만 다른 부분에 비하면 부담은 적다”고 말했다. 또 연매출 3억에서 5억원까지 우대 수수료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연매출 5억원을 올리는 영업장도 서민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가 영세 가맹점에 주는 효과에 대해선 아직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신금융협회는 서울과 5대 광역시 영세 가맹점주 500명을 만나 가맹점 수수료에 대한 의견을 묻고 결과를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고객 혜택 축소 등을 야기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익 악화로 카드사가 각종 혜택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또 카드론 등 대출 규모와 금리를 올릴 수 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