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범죄] “꼭 데리러 올게요, 잠시 맡아주세요” 하지만…

입력 2017-04-10 17:47 수정 2017-04-10 21:13


베이비박스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아기에게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작별’하는 곳이지만 엄마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없어 이곳을 찾는다.

2013년 이후 매년 200명 넘는 부모들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간다.

부모들은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지만 대부분은 지키지 못한다.

엄마는 밤새 울었다

전남 여수에 사는 정다은(가명·20)씨는 2015년 12월 중순 서울로 향했다. 유독 추웠던 겨울 어느 날, 그는 홀로 관악구 난곡동에 있는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정씨는 미혼모였다. 임신 3∼4개월이 돼서야 아이를 뱄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망설였다. 고민 끝에 그는 아이를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정씨도 한 살쯤이었을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 정씨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갔고, 아버지도 가정을 등졌다. 그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내 아기만큼은 그렇게 서럽게 살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은 쉽게 흔들렸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나이가 어리고 경제력도 없는데 아기를 어떻게 키우겠느냐”고 정씨를 나무랐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생각하니 덜컥 겁도 났다. 정씨는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정씨는 베이비박스에 아기의 운명을 맡겼다. 아기를 두고 돌아선 정씨는 근처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새벽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말했다.

“내가 미안하다. 어서 아기를 데려와서 우리 둘이 같이 키우자.”

정씨는 모텔 방 구석에서 흐느껴 울었다. 다음날 정씨는 아기를 데리고 여수로 돌아왔다.

영은(가명)이 엄마 김여진(가명·20)씨도 8개월 전 베이비박스를 처음 찾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재수를 준비하던 김씨는 2년째 사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됐다. 남자친구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말만 했다. 김씨의 아버지도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겨라”고 차갑게 말했다.

아버지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체념, 무책임한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을까. 김씨는 베이비박스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마음을 비웠다. 그렇게 영은이를 두고 돌아서려고 했다. 품에서 영은이를 떼어내 박스에 놓던 순간 갑자기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설득했다. 김씨의 권유로 베이비박스에 찾아온 남자친구는 영은이를 처음 마주했고, 곧바로 딸에게 푹 빠졌다. 두 사람은 영은이와 함께 새 가정을 꾸리기로 했다. 부부가 되기 위한 준비가 이어지는 동안 김씨는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맡겨둔 영은이를 1주일에 한두 번 꼭 찾았다.

김씨는 “베이비박스에 갔던 일이 무척 오래전같이 느껴지면서도 그때 감정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영은이를) 데려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키지 못한 약속

“엄마가 당장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1년 안에 꼭 데리러 올게. 그때까지만 제발 건강하게 있어줘.” “3개월 후에는 우리 꼭 만나 못해준 거 엄마가 다 해줄게.” “제가 학교 졸업하고 꼭 다시 데리러 올게요. 잠시만 목사님께서 맡아주세요.”

베이비박스에 아이와 함께 남겨진 편지에는 대부분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이 적혔다. 2015년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이 242명 중 실제 친부모가 데려간 아이는 26명(10.7%)이었다. 지난해에도 전체 223명 가운데 29명(13%)에 불과했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지난 6년간 연평균 181명이었다. 부모가 되찾으러 오지 않으면 아이들은 짧은 보호기간을 거쳐 입양되거나 보육시설로 넘어간다.

입양은 출생신고가 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대부분 시설로 간다. 지난 2012년 입양 절차를 강화한 입양특례법이 적용된 이후 시설에 입소하는 비율은 더 높아졌다. 실제 2010년과 2011년에는 입양과 시설 입소 비율이 비슷했으나 2012년부터 시설 입소가 5배가량 많았다.

글=최예슬 이가현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