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군사력 키우려는 일본

입력 2017-04-10 17:37
‘포스트 아베’로 불리며 일본 차기 총리로 거론됐던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서울이 불바다가 될지 모른다. 한국에 있는 일본인 구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공공연히 준비하는 가운데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로 향하는 등 군사적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어느 나라 정부든 자국 국민을 보호하는 데는 조금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충고를 무시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정신이 없는 북한을 직접 대면한 일본에서 정치인들이 한반도 비상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라고 자국 정부에 촉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뭐라고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이 발언에 아베 신조 총리의 개헌을 통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화’와 자위대 활동을 한반도까지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3월 발효된 안보법은 일본 밖에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일본인이 명백한 위험에 놓이면 자위대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반도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자위대가 지리적 제한 없이 미군을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때문에 ‘한국에 있는 일본인 구출 대책 강화’ 발언은 자위대가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할 명분을 쌓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더욱이 발언을 한 이시바 전 간사장은 중의원 10선의 중견 정치인이다. 당에서 정조회장과 간사장을, 정부에서는 방위청·방위성·농림수산부 장관 등을 거치면서 안보법 제·개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울 불바다’ 같은 표현이 한·일 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일부 정치인의 돌출 발언 때문에 국민 감정이 나빠지고, 관계마저 틀어진 경우가 허다했다.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인 지금의 한·일 관계를 생각한다면 발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