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수 정태욱이 지난달 27일 열린 20세 이하 4개국 축구대회 잠비아전에서 공중볼 다툼 도중 상대 선수와 부딪혀 의식을 잃었다. 4초 뒤 이상민(29) 선수가 급히 달려와 쓰러진 정 선수의 말린 혀를 빼냈다. 함께 달려온 김덕철(37) 심판은 정 선수의 고개를 젖혀 기도를 확보했다. 10초 뒤 이 선수는 정 선수에게 인공호흡을 했다. 신속한 초동 대처를 받은 정 선수는 경추 미세 골절로 전치 6주를 진단받았으나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는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축구 경기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동료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생명을 구한 이 선수와 김 심판에게 복지부장관상을 지난 3일 수여했다. 이 선수는 “정 선수가 크게 넘어진 걸 보고 기절을 직감했다”며 “가장 먼저 혀가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생명 살리는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13.1% 그쳐
갑자기 심장이 멎는 상태를 심장마비라고 한다.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혈액 순환과 호흡이 정지돼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뇌 손상을 입거나 수분 내 죽음에 이른다. 2015년 병원 밖에서 2만9959건의 심장마비 환자가 발생해 5%인 1508명만이 생존해 퇴원했다. 2011년 2만4902건의 심장마비 환자가 발생해 4.1%인 1019명이 생존한 것과 비교하면 생존율은 다소 높아졌지만 발생 건수 역시 늘었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진영주 과장은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생활양식이 서구화되면서 급성심장정지 환자 발생수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심장마비 환자를 살리려면 상황을 처음 목격하는 이의 역할이 중요하다. 목격자가 심장마비 환자를 발견한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생존율은 3배 정도 높아진다.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2015년 3937건(13.1%)으로 2011년 1198건(4.8%)에서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지만 해외 선진국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응급사고 발생 시 아직도 86.9%의 사람들이 초기처치 방법을 몰라 당황하거나 경증질환으로 소홀히 생각한 채로 응급실로 가는 경우가 발생하는 셈이다.
심폐소생술 잘못했다고 책임 묻지 않아
심폐소생술 시행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자신의 심폐소생술로 환자가 잘못됐을 때 법률적 책임을 떠맡는 게 걱정돼 나서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심폐소생술 교육 현황 및 개선 과제’ 보고서는 “심폐소생술 시행률을 높이려면 일반인이 시행한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해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법률적 보호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홍보해야 한다”며 “국민의 20.5%만이 이를 알고 있으며 낮은 인지율이 목격자 심폐소생술 시행률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담긴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은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제공해 발생한 손해와 사상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행위자는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가구당 1인 심폐소생술 교육이수
조강희(12)양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5년 저녁잠을 자던 아버지가 호흡 이상이 발생하자 심폐소생술로 아버지를 살렸다. 119 대원에게 길을 찾아주기 위해 밖으로 나간 어머니 대신 조양이 어머니가 하던 심폐소생술을 침착하게 이어서 실시한 것이다.
조양의 사례처럼 2015년 병원 밖 심장정지의 52.3%인 1만5682건이 가정에서 발생했다. 응급환자를 최초로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은 가족이나 일반인이다. 이에 복지부는 ‘1가구당 1인 심폐소생술 교육이수’를 올해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 사업계획의 중점사항으로 꼽았다.
특히 지난해 서울시가 시행한 ‘일반인 전화 도움 심폐소생술(Heros) 교육’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2016년 서울시 중랑구 강북구 노원구 강동구 등 4개 구에서 시범사업을 해 가정 내 심장정지 환자 목격 가능성이 높은 주부와 어르신 2만2492명이 교육을 받았다. 올해는 도봉구 서대문구 성동구가 추가돼 3만명 이상을 교육할 계획이다.
Heros 교육은 일반인에게 119 상담 요원의 전화 도움을 받으며 심폐소생술을 하도록 가르친다. 가정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대부분 119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119 상담 요원의 지시에 따라 실습받았던 내용을 떠올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된다.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박범 과장은 “가정에서 발생한 심장정지는 공공장소와 달리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므로 가구당 최소한 1인 이상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119전화 도움을 받아 심폐소생술을 할 경우 두려움을 줄이고 심폐소생술 시행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도 심폐소생술 교육 받아
구급차나 시내버스 등 운전자와 보건교사, 교통경찰 등은 법정 심폐소생술 의무교육 대상자다. 복지부는 오는 12월 3일 법정 의무교육 대상자에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추가키로 했다. 진 과장은 “영유아 질식사고가 발생한 경우 단시간에 기도가 막히기에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처치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급성심장정지 발생은 보통 10월부터 증가해 겨울철에 많다. 급성심장정지 발생건수는 2014년 9월 2317건에서 10월 2475건으로 증가해 12월 2959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에 복지부는 9월 1일부터 일주일간을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 주간으로 정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적극 장려할 예정이다. 진 과장은 “1시간의 짧은 교육만 받아도 가정에서 가족을 살리고 일터에서 동료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관심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폐소생술 동영상 등 교육 자료는 응급의료포털(www.e-gen.or.kr)에서 제공한다.
한국형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 담긴 매뉴얼은
응급조치 잘 모른다면 인공호흡 안 하더라도 가슴압박 심폐소생술 시행을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심폐소생협회는 표준화된 ‘2015년 한국형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을 지난해부터 배포하고 있다.
2011년 가이드라인과 달리 첫 심장정지 환자 발견 시 주변의 위험 상황을 확인토록 하고 있다. 또 가슴 압박 기준을 성인은 5㎝ 깊이, 분당 100∼120회, 만 8세 미만 소아는 4∼5㎝ 깊이로 명확히 했다. 협회 이승준 홍보위원은 “바뀐 가이드라인은 119 전화상담을 통한 심폐소생술 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을 경우 인공호흡이 아닌 가슴압박 심폐소생술이라도 하도록 추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폐소생술은 심장마비 환자에게 호흡과 혈액순환을 보조해주는 과정이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한 경우 현장의 안전을 확인하고 쓰러진 사람의 반응을 확인한다. 반응이 없으면 심장마비일 가능성이 높으니 즉시 119에 신고한 후 환자의 등을 평평하고 단단한 바닥에 대고 눕혀 가슴 압박을 시작한다.
가슴 압박을 시작하기 위해선 환자의 가슴 옆에 무릎을 꿇어앉는다. 한쪽 손바닥을 가슴뼈의 압박 위치에 대고 그 위에 다른 손바닥을 평행하게 겹쳐 두 손으로 압박한다. 이때 손가락을 펴거나 깍지를 껴서, 손가락 끝이 가슴에 닿지 않도록 한다. 가슴 압박 시 팔꿈치는 펴야 한다. 팔이 바닥에 대해 수직을 이룬 상태에서 체중을 이용해 가슴뼈의 아래쪽 절반 부위를 강하고 빠르게 규칙적으로 압박한다.
기도가 막혔을 때는 한 손으로 환자의 머리가 뒤로 기울어지게 하면서 다른 손으로 아래턱의 뼈 부분을 머리 쪽으로 들어 올려 기도가 열리도록 한다. 이때 턱 아래 부위의 연부조직을 깊게 누르면 오히려 기도를 막을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기도가 열리면 환자의 입을 열어 입으로 인공호흡한다.
인공호흡을 할 때는 환자의 코를 막은 다음 구조자의 입을 환자의 입에 밀착시킨다. 구조자는 평상시 호흡과 같은 양을 들이쉰 후에 환자의 입을 통해 1초가량 숨을 불어넣는다. 눈으로는 환자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지 확인한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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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11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