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상습적인 불공정행위 기업에 대해 과징금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을 허용했다. 기획재정부도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의 핵심 과제에 ‘양극화 해소’를 11년 만에 포함시켰다. ‘순실의 시대’가 저물고 대선이 코앞에 닥치자 정부부처가 ‘야권 코드 맞추기’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10일 “미국이나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은 상습적으로 불공정행위를 저지르는 기업의 경우 가중처벌 기간 기준을 10년으로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3년밖에 되지 않아 상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기업의 경각심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정거래법 위반 횟수에 따른 가중처벌 기준은 ‘이전 3년간 2회 이상 위반’으로 규정돼 있다. 또 산정된 과징금의 20% 이내에서 과징금 액수를 가중할 수 있다.
하지만 EU 등에선 가중처벌 기준을 ‘이전 3년간’이 아닌 ‘10년’으로 적용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EU 등에 비해 가중 처벌이 약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한번 담합을 저지른 기업이 몇 년 지나 다시 저지르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공정위는 가중처벌 기준을 5년이나 10년으로 확대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 달 중 공정거래법에 관한 과징금 고시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고시 개정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여기에다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의 최대 10%’인 과징금 부과율 상향 조정도 논의하고 있다. 불공정행위 기업에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매기는 것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 중인 더불어민주당 의견을 사실상 받아들인 셈이다.
공정위가 과징금 제도를 대하는 태도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대규모유통업법 과징금 고시를 개정해 부과 기준을 전체 납품대금에서 관련법 위반 금액으로 완화했다. 당시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 실효성을 높이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과징금 깎아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공정위뿐만이 아니다. 다른 정부부처도 정책 기조가 달라지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7일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에 동의했다. 그동안 정부는 기재부를 중심으로 청년수당에 반대해 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월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청년수당에 반대하는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기재부는 지난달 말 내놓은 ‘내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융 계획 작성지침’에서 4대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로 양극화 해소를 내걸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이후 사라졌던 양극화 해소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만큼 정부 성향이 드러나는 정책 분야가 없다”면서 “내년 예산안 편성은 차기 정부 출범 이후에야 윤곽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교육부는 최근 교육격차 해소 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어 ‘코드 맞추기’란 의심을 받는다. 지난달 8일 ‘경제·사회 양극화에 대응한 교육복지 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발표하면서 유치원에서 고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정부부처의 코드 맞추기는 대선이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로 굳어질수록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각 부처는 비공식적인 대선 대응팀을 운영하면서 각 후보 캠프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각 캠프에서도 최종 공약집을 준비하면서 생뚱맞은 공약이 나오지 않도록 관련 부처에 자문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부처 내부에선 이미 최순실 사태와 연루된 고위 공직자들의 ‘영(令)’이 서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1급 이상 고위직의 경우 대부분 박근혜정부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대선 후보 캠프와의 정책 교감은 부처 내 다른 고위직 후보군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종=이성규 이도경 기자 zhibago@kmib.co.kr
[단독] 정부부처 정책수정… 차기정권 눈치보기
입력 2017-04-1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