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재심’에는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시각 장애인이 된 어머니(김해숙 분)가 나온다. 영화는 법에 대한 이야기지만 의료적 관점에선 그 어머니의 상황도 심각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당뇨병으로 인한 실명, 막을 수 없었을까?
당뇨병은 합병증이 더 무섭다. 비만 운동부족 스트레스 노화 등 후천적 요인의 영향이 큰 ‘2형 당뇨병’은 수년간 증상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진단될 쯤이면 이미 합병증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 눈 콩팥 말초신경 심혈관계 등 여러 장기를 망가뜨리는 당뇨 합병증은 일단 발병하면 치료가 어려워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실명에 이를 수 있는 눈 합병증은 2014년부터 전체 당뇨 합병증 중 발생률 1위에 오르며 빠르게 늘고 있다.
1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당뇨 눈 합병증 환자는 37만6469명으로 5년 전인 2011년(29만2908명)에 비해 28.5%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당뇨병 환자(269만6304명)의 14%에서 눈 합병증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병적 합병증(13.1%) 콩팥 합병증(5.8%)을 3년째 앞섰다.
당뇨 눈 합병증은 높은 혈당이 안구 내 어떤 부위에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질환이 달라진다. 망막 내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당뇨 망막증, 시신경이 망가지는 신생혈관녹내장, 수정체가 뿌옇게 되는 백내장, 망막박리, 마비사시 등이 있다. 녹내장이나 백내장은 노화 등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최근 당뇨병에 의한 사례가 늘고 있다.
눈 합병증의 대다수는 당뇨 망막증이 차지한다. 지난해 눈 합병증 환자의 89.6%(33만7443명)가 해당됐다. 실명의 가장 많은 원인으로 당뇨 망막증의 한 형태인 ‘황반 부종’이 꼽히지만 일반인에게는 비교적 생소하다.
황반은 눈 속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망막(카메라 필름에 해당) 중에서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뒤쪽 중심점을 말한다. 볼펜자국 크기(0.5㎜)로 색과 정밀한 것을 보는 원뿔시각세포 600만개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눈 중의 눈’으로 불린다.
이 황반 주위의 미세혈관들이 당이 높은 혈액에 의해 손상받아 물(체액)이 새어나와 고여 부은 상태가 ‘황반 부종’이다.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곳이 부어있기 때문에 시력이 서서히 떨어지고 때때로 물체가 휘어져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순천향대병원 안과 이성진 교수는 “당뇨 망막증의 경우 망막 주변에 이상이 나타날때는 시력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지만 중심부인 황반에 변화가 생기면 초기부터 시력이 손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 환자가 알아차리기 어렵다”면서 “당뇨 망막증 진단을 받으면 증상이 없더라도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1년마다 안과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반 부종은 조기에 치료하면 시력을 어느정도 보존할 수 있지만 방치하면 시력 회복이 어렵다.
우리나라에선 당뇨 망막증에 대한 대규모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황반 부종 환자의 정확한 실태 파악이 안돼 있다. 외국 연구결과를 기준으로 국내 환자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이동원 교수는 “당뇨병이 진행될수록 황반 부종 빈도가 증가하는데, 20년 이상 당뇨를 가진 환자의 30%에서 황반 부종이 동반되고 가벼운 비증식성 당뇨 망막증일 땐 2∼6%, 많이 진행된 증식성일 땐 70%에서 황반 부종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당뇨 황반 부종이 당뇨로 인한 실명의 주된 원인임에도 국내에선 별도의 ‘질병 코드’ 없이 당뇨 망막증으로 분류돼 적합한 치료 기준 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국제당뇨병연맹의 2014년 자료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약 11%에서 황반 부종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당뇨 황반 부종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사람은 27만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성진 교수는 “황반 부종으로 인한 시력 저하를 단순히 노화 현상 정도로 생각하다가 시력을 잃어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은 물론 당뇨 관리도 어렵게 된다”면서 “경각심을 주자는 차원에서 의료계선 황반 부종을 ‘눈 속 시한폭탄’ 혹은 ‘시력 저승사자’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황반 부종은 조기 발견만 하면 레이저로 손상된 혈관을 지져 없애거나 혈관의 터진 부위를 막아주는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가 가능하다. 최근엔 안구 내 신생혈관 성장을 억제하는 항체 주사가 표준 치료법으로 권장되고 있다.
당뇨병 환자의 황반 부종을 예방하려면 혈당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 노력이 중요하다.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수치가 높으면 당뇨 황반 부종 위험이 2∼3배 높아진다. 금연도 필수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소리없는 ‘눈 속 시한폭탄’ 황반 부종… 당뇨보다 더 무섭다
입력 2017-04-11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