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대문교회(손윤탁 목사) 본당에 들어서는 벽안(碧眼)의 남성들의 표정엔 호기심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9일 오전 교회를 방문한 3명의 손님은 82년 전인 1935년 선교사역을 마치고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간 올리버 R 에비슨 선교사의 후손들이었다. 의료 선교사였던 에비슨은 남대문교회 초대장로로 교회의 기틀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 창립교인이었다.
에비슨 선교사의 증손자 더글라스 에비슨 블랙(Douglas Avison Black·데이터 베이스 구축 전문가)과 피터 L 블랙(Peter Lee Black·변호사), 고손자 랄프 크루(Ralph Crewe·음악가)씨는 이날 종려주일 예배와 성찬예식에 참석하고 교인들과 교제했다.
예배를 마친 뒤 교인들과 인사를 한 후손들은 교회 본당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교회 관계자들이 남대문교회의 파이프 오르간을 소개하자 크루씨가 연주해 보고 싶다며 건반에 손을 올렸다. 피아노를 전공한 크루씨가 연주를 시작하자 본당에 있던 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은 크루씨였다. 그는 “할아버지가 장로로 있었던 교회에 이렇게 훌륭한 오르간이 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면서 “소리가 너무 좋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후손들은 남대문교회 본당 1층에 있는 사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할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사료실까지 만든 남대문교회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블랙씨는 “할아버지가 한국인을 치료하고 함께 예배드렸다는 건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직접 사역했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사료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에비슨 선교사는 선교뿐 아니라 한국 의학발전의 기틀을 닦았던 인물이다.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 교수로 강의하면서 병원까지 운영하던 에비슨 선교사는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미지의 땅인 조선의 선교사로 투신했다. 1893년 우리나라에 입국해 1935년 캐나다로 돌아갈 때까지 42년 동안 의료 선교사로 일했다.
에비슨 선교사는 제중원 4대 원장과 세브란스병원 초대원장을 지냈다. 의학교를 설립해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들을 키워냈으며 한국어로 된 의학 교과서를 처음으로 발간했다. 에비슨 선교사는 백정들에게 상투를 틀 권리를 찾아줬으며 단발을 원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머리를 직접 잘라줬다. 당시 치명적 전염병이었던 콜레라 방역 사업에도 앞장섰다. 교회에서는 장년들의 성경공부를 지도했다. 부인 제니 에비슨 선교사는 남대문 유치원을 설립했다.
에비슨 선교사 후손들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연세대 창립 132주년·통합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들은 에비슨 선교사가 남긴 선교편지와 사진들을 연세대 국학도서관에 기증했으며 연세대는 이를 묶어 출판키로 했다.
글=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할아버지가 사역했던 교회서 예배 드려 감동”
입력 2017-04-10 00:02 수정 2017-04-10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