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같이 가면 살린다

입력 2017-04-10 00:02

어느 추운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을 걷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곁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추위 속에서 앞만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보았습니다. 쓰러진 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고 작은 숨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길 가던 사람은 쓰러진 사람과 함께 가다가 자기도 죽을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고 혼자 떠났습니다. 그 후에 다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한동안 머뭇거리다 망설인 끝에 쓰러진 이를 업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낑낑거리면서 추위를 뚫고 한 발 한 발 내딛었고 땀을 흘렸습니다. 그러다가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사람은 이미 숨이 끊어졌습니다. 죽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쓰러진 사람을 외면했던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같이 살 때 서로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는 동네는 마을이 아닙니다. 제가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같이 가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라고 표제어를 썼습니다. 요즘은 ‘혼밥시대’라며 혼자 밥 먹고 차 마시고, 혼자 여행 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1인가구가 다인가구 숫자를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과연 혼자 있는 것이 즐겁기만 할까요. 병이라도 난다면 큰 일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다 죽으면 고독사라 합니다. 자살자 상당수는 주변에 대화를 나누거나 애환을 나눌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곤경에 처해 도움받기 원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3명은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고 같이 산다고 마냥 행복할까요.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함께 일하고 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또 같이 어울려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함께 해야 합니다. 책을 펴놓고 암기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같이 살고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에 외동딸, 외동아들만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벗 삼아 삽니다. 함께 어울릴 기회가 박탈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은 성적도 IQ도 연봉도 아닙니다. 관계에 있습니다. 관계지수가 높으면 행복 지수도 높아집니다. 교회 안에서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많습니다. 유치부나 유초등부 성경학교와 청소년 수련회는 공동체를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성인에겐 단기선교 활동도 좋은 학습의 장입니다. 교회는 자체적으로 공동체를 갖고 있습니다. 예배공동체이며 소그룹 공동체, 식탁 공동체이자 기도 공동체이며 성만찬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기도도 합심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중풍병자 치유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만약 중풍병자가 혼자였다면 그는 주님을 만나거나 치료를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변엔 4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합심하여 지붕을 뚫고 병자를 매달아 내렸기에 죄사함과 치유를 받았습니다. 같이 가면 살릴 수 있습니다.

김종호 목사(춘천 효자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