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창(槍)과 이재용(49·구속 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측의 방패가 ‘433억원 최순실 뇌물’ 혐의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박영수 특검은 법정에 직접 나와 “이 사건은 가장 고질적이고 전형적인 정경유착 범죄”라며 “우리 역사의 뼈아픈 상처”라고 했다. 박 특검은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며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날 150석 규모 방청석은 취재진과 일반 방청객으로 빈자리가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는 이 부회장이 구속 이후 처음 모습을 보였다. 회색 정장에 흰 셔츠를 입은 이 부회장은 차분한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아 허리를 세웠다. 재판 내내 부동자세로 특검 측 발언을 경청했다. 입술이 마르는지 때때로 립밤(입술보호제)을 꺼내 발랐다. 박 특검이 모두(冒頭) 절차에서 공소사실을 낭독하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핵심은 삼성그룹 관련 뇌물 사건”이라고 하자 이 부회장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낮은 한숨을 쉬었다.
특검 측은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61)씨를 “한 배를 탄 공범”이라고 표현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세 차례 독대하며 최씨 딸 정유라(21)씨의 승마 관련 지원 등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이 원활하도록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사업 현안을 부정 청탁했다는 것이다.
특검 측은 “최씨는 (삼성이) 선의로 지원했다고 하고, 삼성 측은 강요에 의한 지원이었다고 주장한다”며 “이 사건의 진정한 피해자는 국민연금 가입자와 삼성그룹 계열사 주주들”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 주장은 모순투성이”라고 반박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송우철 변호사는 “삼성은 문화융성·체육발전을 요구하는 대통령 요청에 따라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원했다”며 “국민연금 가입자가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굉장히 선동적”이라고 했다.
정씨 승마 지원을 두고 양측은 다른 말을 했다. 특검 측은 “최씨 요구를 들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독대할 때마다 정씨 승마 지원을 요구했다”고 했다. 2016년 8월 이후 언론 보도 등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삼성 측이 정씨가 타던 명마(名馬)를 몰래 숨기는 이른바 ‘말 세탁’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측은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고 이 부회장은 그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았다”며 발을 뺐다. 송 변호사는 “이 부회장이 최씨를 알게 된 건 2016년 8월 말”이라며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에게 보고받아 알게 됐다”고 했다.
증거조사에서는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의 진술조서가 공개됐다. 박 전 사장은 “2015년 7월 25일 오후 대통령과 독대한 이 부회장을 만났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며 “당시 이 부회장이 ‘(대통령과) 30분간 독대했는데 15분을 승마 얘기만 하더라. 신문에서 대통령 눈빛이 레이저빔 같을 때가 있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사장은 “같은 달 29일 독일에서 만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최순실 생명과도 같은 정유라가 지금 독일에 있다. 삼성이 도와 달라’고 했다”며 “대통령 요구가 지원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삼성 일에 고춧가루를 뿌릴까 걱정됐다”고도 했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박영수 특검 “정경유착 범죄” VS 이재용 부회장 측 “대가없이 지원”… 세기의 재판 개막
입력 2017-04-07 18:42 수정 2017-04-07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