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 화백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책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김영사)가 나왔다. 이 책은 원로조각가 최종태(85)씨가 서울대 미대시절 사제의 인연으로 출발했던 스승 장욱진에 대해 쓴 글을 엮은 것이다.
“장욱진 선생을 만나서 나는 행복했다. 그와 함께한 날들을 회상하면서 내가 본 대로, 내가 느낀 대로 나는 기록했다. 한마디로 그는 참 멋있는 화가였다.”
미술이론가들이 딱딱한 문체로 쓴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 있다. 정감이 있고 사연이 있고 흠모가 있다. 그러나 용비어천가식 헌사가 아니라는 게 이 책의 힘이다.
최 작가는 1954년 서울대에 입학하면서 잠시 강단에 섰던 장욱진을 만났다. 스승 중에서는 조각가 김종영과 장욱진을 가장 존경했다는 그는 “김종영을 교실에서 만났고 장욱진을 교실 밖에서 만났다”고 표현했다. 김종영이 학처럼 고고했다면 장욱진은 용처럼 자유롭고 호방했다.
그는 장욱진을 ‘큰형’처럼 무람없이 대했다. 함께 어울리며 작품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더 정확히 본다. 장르는 다르지만 그 역시 평생 미술을 하며 살아온 만큼 곳곳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직관이 빛난다. 장욱진의 풍경에는 나무와 닭, 돼지 등 짐승이 있지만 이것조차 도인처럼 그려져 있는 것으로 그는 읽는다. “한국사람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림, 장욱진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그림, 그것이 장욱진의 그림이다.”
책 제목인 ‘나는 심플하다’는 장욱진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었다. 그는 이를 ‘나는 깨끗하다. 나는 죄가 없노라!’의 선언으로 해석한다. 일생 동안 그리는 것 외는 어떤 것도 하지 않은 사람, 정부 돈이 건네졌던 민족기록화 작업 요청이 오자 줄행랑을 쳤던 사람, 그렇게 그리는 일에만 평생을 바쳤고 끝내 승리했음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한다.
해방 이후 한국미술계는 미니멀리즘, 극사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민중미술 등 여러 사조가 유행처럼 지나갔다. 장욱진은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었다. 특정 사조의 바람이 불 때 마다 고독했겠지만 견디어내며 더 단단해진 작가. 그런 스승을 제자는 거대한 서구 미술사 앞에서 정면으로 항거한 작가로 정의내린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최 작가는 추상미술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무는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기도하는 여인’ 등 종교적 도상의 교회조각으로 유명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자유롭고 호방했던 장욱진 돈되는 작업 들어오자 줄행랑”
입력 2017-04-10 00:04